2. 꼬리 긴 쥐선생과 납치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해가 아직 지지도 않았는데, 옆 우리의 꼬리 긴 쥐새끼는 벌써부터 수선을 떨고 야단이었다. 학식 있는 독자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본디 우리 햄스터란 족속은 야행성으로 낮에는 안락한 굴속에서 잠을 자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해가 벌건 대낮부터 철떡펄떡, 오만 난리를 치고 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 꿈에 잠을 설치고 있던 차에, 고놈의 찍찍거리고 쳇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나는 왈칵 짜증이 났다.
“이봐요, 형씨. 잠 좀 잡시다. 남들 다 잘 시간에 이게 무슨 지랄이요?”
놈은 대답도 하지 않고 열심히 우리 속을 빙빙 돌며 연신 찍찍거렸다. 학식 있는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침묵은 곧 천금과도 같고, 주둥이야말로 재앙의 근원이니. 저놈의 쥐새끼가 천한 가문 출신이란 것은 이것만 보아도 곧 알 수 있노라 하겠다.
“글쎄 그만두라니까요. 교양도 상식도 없소?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구만.”
“심란이 뭔데?”
“심란이 심란이지 뭐에요. 마음이 평온치 않고 어딘가 불안하다, 이 말이요.”
“심란, 심란, 심란.”
“형씨도 꽤나 심란한가 보오.”
“심란, 그래, 심란하지, 심란해, 심란, 심란, 심란, 혀가 구르는 게 참 재미있고나, 심란, 심란, 심란, 심란, 심란.”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뭐가 그리도 심란한데요?”
“그게 내가 꿈을 하나 꾸었거든.”
“근데요.”
“아마 내가 팔려갈지도 몰라, 꿈에서 보았어.”
“잘 됐네요. 비린내가 나는 인간만 조심하소.”
“비린내? 무슨 비린내?”
이미 잠도 싹 달아났겠다, 나는 앞니 긴 먼 일가붙이에게 옆집 개구리 선생의 지혜를 일러 주었다.
“그거 유용하군, 참 유용해. 절이라도 올리고 싶구만. 헌데 그게 아니란 말이야.”
“왜요. 무슨 일이 있소?”
“들어 보라구....... 그게 말이야, 확실하지가 않아. 내가 꾼 꿈을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유리에 김이라도 낀 것마냥 선명치가 않다는 말일세.”
“팔려 간다면서요. 그러면 좋은 일이 아니오?”
“뚜껑이 덜컥 열리고, 큰 손이 날 잡은 것은 확실해. 그런데.......”
“그런데 뭐요.”
“모르겠어. 그 다음이 보이지 않아.”
쥐는 불안한 듯 밥도 먹지 않고 찍찍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괜스레 불안해졌으나, 고귀한 햄스터 가문은 저런 시궁쥐와는 다르기에, 나는 씩씩하게 밀웜과 호박씨를 야무지게 삼키었다. 아, 쳇바퀴도 몇 바퀴 돌고. 아무튼 제대로 된 설치류란 밤에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의연한 태도로, 저편에서 번뜩이는 비늘 덮인 족속들의 보내는 눈빛 앞에서도 당당해야 한다.
그 다음 날이었다.
배불뚝이의 가게는 그닥 붐비지는 않는다. 인간들이야 원체 다 비슷하게 생겼다지만(수컷과 암컷을 구분하게 된 것도 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주 오는 인간들은 얼추 구분이 가게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한 놈이 있는데, 인간이야 본디 흉측하지만은 그 중에서도 징그럽기로는 아주 제일이다. 상통은 꼭 뱀처럼 길쭉한데다 심지어는 눈깔마저 가로로 쭉 째져 있고 게다가 잘 감지도 않는다. 잘은 몰라도 아마 혀도 갈라져 있을 것이다. 삼키지도 못할 새알을 죄 집어삼키고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도마뱀마냥 배때기에는 살이 뒤룩뒤룩 쪘다(가게의 주인만큼이나).
말하건대 실로 우스운 꼴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은, 내가 알기론, 겨울잠도 자지 않고, 서로를 잡아먹지도 않을 정도로 배곯을 일도 없는데.
아, 다음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우선 제諸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첫째, 인간의 언어란 우스꽝스러운데다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알아듣기가 힘들어, 제대로 된 말로는 기록하지 못하였다. 둘째, 이야기 다음에 일어난 일은 실로 한탄스러운 비극이라, 비단 나뿐만 아니라 털이 나고 앞니가 길쭉한 우리 동포는 끔찍스러운 묘사에 몸서리를 치리라, 그렇기에 충격과 공포에 일정 부분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딸랑, 하고 가게의 유리문이 열렸다(유리문이라 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인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갇혀 있는 신세란 말인가? 이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볼 거리다). 앞에서 말한 그 뱀 꼴을 한 인간이 숨을 헐떡이고 허우적거리며 들어왔다.
안녕XXX
그래오랜XXX
잘XXX셨죠
(역겨운 목소리는 온 공기를 우렁우렁 울렸고, 말씨는 또 여간 천박스럽지가 않았으나, 이해를 위해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기술하도록 하겠으니 참아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집XXX이밥을XXX
날X가더워XX그런가
살아있는XX는그나마XXX까요
아무래도XXX 지난번에사간핑키는다먹었나
아직좀남아서XXX에넣어얼X뒀어요
자네가뭐를XXXX했지 나일모니터였나사바나모니터였나
나일모니터요 근데습도XX을XX계로하나요XX그릇으로하나요
그거야크게XXX없어 아무튼XXX하면XXX하잖아
그렇군요
(뒤로는 끔찍스러운 생태와 환경에 대한 기나긴 토의가 이어졌다. 작가 재량으로 과감히 생략한다. 감히 사견을 더하자면, 비늘 달린 족속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습기가 아니라 불꽃이다. 깡그리 구덩이에 처밀어넣고 불을 질러 버려야지.)
그러면XXX나한마리사가
저렇게XX거XX수나있을까요
그럼당연히먹지 한번먹여봐
아무리그래도너무큰데요
일단한번XXX라니까
그럴까요그럼
(의미 없는 잡담.)
자네그런데XX있는먹이줘봤나
아뇨한번도 XX는먹여봤는데 그건얼린XXXXX
이참에한번XX봐
에그래도괜찮나요 파시는거아니XX
오래안나가는건어쩔수없지 이렇게라도XX해야지
조금XX하긴하네요
자네가직접XXXX볼래?
그래도되나요?
어차피자네X가면 XX가직접줘야하잖아
썩내키진않는데요
XX미리XX야나중에도또XX해
나는 두 인간의 가당찮은 대화를 기가 차서 듣고 있었다.
“이봐요 형씨, 저놈들 하는 소리 듣고 있소? 짐승 목숨을 아주 개똥같이 아는구만. 떡하니 앞에 두고, 살아있는 게 뭐가 어쩌구 저째? 어이가 없구만. 그렇지 않아요? 수리에게나 물려갈 놈들.”
그러나 꼬리 긴 쥐선생(고서故鼠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앞으로도 높여 부르도록 하겠다)은 말이 없었다. 그저 몸을 벌벌벌 떨며 한구석에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제 죽음을 미리 알았음이 분명하다.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형씨, 괜찮소? 왜, 고양이라도 보았습니까? 독안에 든 쥐꼴마냥 부들부들 떨고만 있어요?”
나는 농을 던졌다. 그러나 옆방의 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제諸 독자께서도 약한 짐승이라 잘 아시겠지만, 공포는 전염된다. 무리가 독수리나 뱀이나 고양이같은 포식자 앞에 놓이면, 말 그대로 죽음 같은 공포가 온 몸을 타고 흐르고, 개별의 의식은 곧 군체의 의식이 되어 여러 마리도 한 마리처럼 부들부들 떨게 된다. 공포를 깨는 것은 한 마리의 죽음이다. 희생이라면 희생이고, 쥐죽음이라면 쥐죽음이지만, 딱 한 마리가 꿀떡 삼켜지는 바로 그 순간 무리는 퍼뜩 정신을 차려 우르르 달아나는 것이다. 햄스터야 독립 생활을 하니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여하튼 그런 상황이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도 불현 듯 덮치는 날카로운 발톱도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쥐선생은 그걸 느끼고 있었다. 두려움에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옮아왔다.......
XXX으로할까
태어난지XX이나됐어요
나가지도않고아주골칫거리야 벌써XX년이나되었는데 거기다꼬리때문에징그럽다고 잘안나가거든애초에
XX도처량하네요
에이그런말말라고 그럼내가뭐가되나
하하
덜컥, 쑥, 불쑥. 크고 험악하고 자비없는 손은 단박에 쥐선생의 모가지를 대뜸 붙들었다. 아아,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나는 그것을 보고만 있었으니, 약한 짐승의 비장은 온통 녹아들어가는 듯하였다.
‘이봐요, 형씨,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잖아요? 한방 이빨이라도 박아 넣어요! 찍소리도 못하고 죽는다고 말은 합디다만, 진짜 찍소리 한번 못하고 그대로 죽을 테요? 형씨, 형씨! 아니, 노형! 덤벼들라니까요! 잰 발은 두었다 어디다 쓰겠소? 달아나요, 달아나! 당신 조상들은 곳간도 여럿 축내지 않았어요? 게다가 또, 당신 조상들이 인간을 죽이면 좀 죽였소? 몸에 벼룩도 한 마리 안 붙어 있어요? 염병할, 역병이라도 한번 싸지르고 가시오!’
이런 말을 목구멍이 찢어져라 소리치고 싶었으나, 수염 한 가닥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텅 빈 눈으로 쥐선생은 내 쪽을 한번 돌아보았다. 모든 희망을 놓아 버린, 동시에 아, 어제 보았던 꿈의 끝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체념의 눈이었다. 그 시선에 굳어 있는 몸이 풀려, 나는 유리창에 세차게 몸을 내던졌다. 두 눈에는 뜨거운 기운이 서렸다.
다음 일은, 주둥이에 다시 올리기는커녕 떠올리기도 끔찍하다. 헛되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건방지게 몸뚱이만 잔뜩 불렸던 제 조상과 비교하면 우습디 짝이 없는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보잘것없는 뿔 몇 개나마 흉측하고 울퉁불퉁한 대가리에 달고 있는 비늘 덮인 족속들이, 평소엔 눈만 끔뻑대며 잘 움직이지도 않다가, 염병할 인간의 손아귀에 붙들린 쥐선생의 꼬리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선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시고 혀를 낼름거리며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와엄청빨리XXX네요
요놈이오래굶었지
그거XXXX도마뱀인가요
자네도꽤나아는군그래
에이다여기서배웠죠
저아XXX고원에서온녀석이지높은데만살아서 요새XX가하도더우니XX이없었는데
확실히산XX는 반응이훨씬좋네요
보는맛도있어 얘들도좋아하고
으그래도살짝징그럽긴하군요
징그럽기는이사람아 저녀석들이원래먹는게저건데
아아, 슬프도다, 아아, 원통하다, 아아, 비통, 철통하기 그지없다.
나는, 눈앞에서 옆방의 꼬리 긴 쥐가 꿀꺽, 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벼락같이 달려든 끔찍한 짐승은 단숨에 쥐선생을 집어삼켜 버렸다. 비죽배죽 튀어나온 이빨 사이로 꼬리가 위아래로 흔들리다, 마침내는 부질없이 축 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마저 저 타락한 짐승은 삼켜 버렸다.
잘 가시오, 쥐선생. 험한 말을 해서 죄송했소. 아무쪼록 좋은 곳에 가세요. 고양이도 뱀도 새도 없고, 인간만 있는 곳으로 가서 눈알이란 눈알은 죄다 파먹고 손가락 발가락도 죄 뜯어 버리세요, 곡식도 몽땅 슬어 버리시고.
음, 지금 돌이켜보자면, 충격과 애도에 지나치게 오래 빠져 있었는가도 싶다. 다음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은 고백하건대, 나의 부족함이로소이다.
이야XXX에꿀꺽XX버리네요
그렇지그렇지
근데저렇게큰놈은 아마XX이는못먹을거같은데요 아무래도XXX모니터니까 게다가아직완전크지도않았구
그래?그러면좀더작은녀석으로XXXX
뭐가좋아요
음햄XX도좋고X트새끼도좋고 아무튼크기만작으면 대부분은XX삼킬수있으니
그럼X스터로할게요몇마리사면되죠
세네마리정도만가져가도 당분간은충분할거야
에이그럼XX도사야되잖아요
자네가XX다닌지얼마나오래됐는데 먹이야줄수있지 우리는자네집에도남는게있잖아
너무많지않나요
그정도야금방XXX지 밥은내가남는거 든든히챙겨줄게
눈에선 눈물을 철철 흘리느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지는 못했으나, 덜컹, 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뚜껑이 열린 우리로 어떤 냄새가 코를 찌르도록 훅- 하고 풍겨왔다.
그것은, 비록 옅어지기는 했으나,
인간의 몸에 묻은 비늘 덮인 족속의 끔찍한 비린내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