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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Jul 21. 2019

6월과 살구

한성대 근처 한 공원에서

6월 어느 날에, 그 전날 여느때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멍청히 미적거리다가 막차를 놓쳐서 동아리 후배 H네 집에서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한참 비어서, 길가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살구를 한 봉지 샀다. 10개에 5천원이던가 스무 개에 5천원이던가.

무지하게 더웠다. 공원으로 올라가 딱히 씻을 곳도 없어 그냥 대충 먹기로 했는데, 노랗고 붉게 익은 살구는 즙이 엄청나게 많았다. 옆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즐겁게 얘기를 하고 계시더라. 사정은 잘 모르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만난 여자가 누구냐고 귀여운 타박을 놓고 계셨고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우리 둘만 먹기 뭣해서 어르신들, 살구 좀 드세요, 즙이 많고 답디다, 하니 반색을 하시면서 아유, 그럼 두 개씩 먹어도 돼요? 그럼요, 안 될 게 무업니까.

느긋하게 앉아 옆자리 노인 커플의 이야기를 흘려 들으면서 살구를 먹었다. 저렇게 늙고 싶다, 같은 생각을 했다. 즙이 왈칵 터져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바람이 살랑 불었다. 어느 6월의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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