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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Aug 09. 2019

인류의 역사

인간의....모든, 그러니까, 역사가, 이 땅 위에 보인다면 어떨 것 같아요?

뭐?

인간의 역사요. 모든 인간의 역사가.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그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다크 소울>이라고 알아요?

그게 뭔데.

게임인데요.

몰라, 게임엔 관심 없어.

그래요? 재밌는데.

관심없대도.

나중에 한번 꼭 해봐요. 할인도 자주 할텐데.

글쎄, 관심 없다니까.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여튼 그 게임에 보면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보이거든요. 바닥에 핏자국이 남아 있어서, 그걸 조사하면 죽는 순간이 보여요. 투명하고 희끄무레한 유령처럼 떠올라요 막. 보다보면 그것도 웃긴데. 하여튼 오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죽어서......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 그래, 근데 그게 뭐.

그러니까, 그거 비슷하게요. 최초의 인간부터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으면 어떨 것 같냐구요. 


어디부터가 인간인데? 

네?

어디부터가 인간이냐고. 

그게 중요해요?


생각해보니 딱히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대충 불 발견하고 몽둥이 들고 두 발로 다닐 때부터라고 쳐요.

그래, 그래서.

그래서라뇨?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응이 고작 그거에요?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데? 애초에 그걸 뭐하러 봐?

뭐하러 보긴요, 이건 그야말로 혁신, 혁명,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통합의 기회라니까요. 당장 봐요, 역사분쟁으로 서로들 얼마나 싸워요. 그때 그냥 딱 보는 거에요. 테레비나 유튜브 보듯이. 그 장소에 가면 눈앞에 바로 펼쳐질 텐데 니가 옳네, 그르네 싸울 일도 없을 것 아니에요? 역사학자들은 죄다 굶어죽겠지만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진리, 유일무이한 역사적 진실이 드러날 거라구요.


그의 말을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닐걸.

뭐가 아니에요.

너, 오늘 뉴스 봤어?

맨날 똑같죠. 

댓글은? 

기사도 안 봤는데 댓글을 어떻게 봐요.

요새는 맘만 먹으면 다 볼 수 있어. 어떤 사건이든지, 어떤 논쟁이든지, 실시간으로. 근데 의견이 맞던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벌어진 일을 눈앞에 뻔히 두고서도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피터져라 싸우는데, 옛날 일이라고 다르겠어? 더하면 더했지.

그래두요.

뭐가 그래두요야. 


거기다, 본다 한들 인간의 역사는 뻔하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싸지르고 자라다 또 죽이고 죽였을 것이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부터. 지금이야 번지르르 말은 잘 하지만, 죽여대는 꼴은 변하지도 않았다. 봐봤자 지루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굳이 내지는 않았다. 


만약 놈의 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 글쎄, 모르겠다. 아마 길게 탄식을 내뱉지 않을까. 그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발전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하루 종일 내 방 안 의자에 기대 앉아 돌려 본들 바뀌는 것은 옷 정도가 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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