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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Aug 12. 2019

강릉 기행

1.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 대구를 다녀왔고 그보다 전에는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대구 신세계 백화점에선 홋카이도 명물, 특산품을 종목별로 모두 비치해 두고 있었다. 로이스 초콜렛을 사다 엄마에게 주었다. 이런 세상인 것이다. 대구에서 사면 녹지도 않는다. 생초콜렛인데도.

강릉에는, 가족과 간 것을 빼고도 다섯번째다. 오랜만에 바다에 들어갔다. 5시임에도 날은 더웠고 파도가 높았다 - 늙은 우리는 허우적대며 낄낄거렸다. 더는 놀지도 못하겠어.

2.

별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성수기에 잡은 숙소는 비쌌고 시내 한복판이라 별 대신 달무리에 잠긴 달만이 떠 있었다. 다리에서 바라본 빛은 아름다웠다.

술을 마시며 나는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나인가, 머리부터 반으로 가르고 나면 달아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무언가가 빠져나가지 않을까 싶어서.

바다에 가도 바다에 대한 글은 나오지 않았어, 계속 걸어들어가 고래 뱃속에 삼켜진다면 모험기라도 쓸 수 있겠지만 몸이 좋고 보기좋게 그을린 안전요원들은 호루라기를 귀가 찢어져라 불어댈 것이다.

3.

여행은 그리 재밌지 않다. 갇혀 있기 싫어 떠나온 곳에서도 나는 갇혀 있는 것이다, 외롭도록.

그러나 항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이 난다. 가만히 있다가도 웃음이 지어져. 겨울바다가 그랬고, 호수에서 타던 자전거가 그랬고, 커피 조형물 위에서 보았던 미소가 그랬고, 눈덮인 모래가 그랬고. 이번에도, 아마.

4.

돌아온 서울은 불의 지옥이었다. 태양이 산 채로 구워 댔고, 강릉의 바다와 강을 그리워하며 나는 마감이 오기 전에 바다의 추억이 어떤 모습으로든 떠오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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