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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Aug 03. 2019

공포의 개구리

누구에게나 무서운 것은 있고 나한테는 그게 개구리다. <나는 햄스터로소이다>의 햄선생은 개구리가 우스꽝스럽게 생겼고 우둔해서 그냥 싫어하는 거고, 나는 개구리가 무섭다.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몸이 떨린다. 주변에서는 대체 귀여운 개구리가 뭐가 무섭냐고 하는데 모르는 말이다. 생긴 것부터가 공포스럽게 생겼다. 눈알은 툭 튀어나왔고 가로로 째져 있는 데다 피부는 끈적끈적 미끌거리고 어딜 보는지도 모르겠다. 어딜 보는지도 모르게 앉아 있다가 어디로 튈 줄 모른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예측불가능성, 그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야말로 진정한 공포라고 러브크래프트도 이야기했지 않나. 갑자기 튀어서 내 다리로 뛰어오를지 얼굴에 가서 붙을지 어떻게 아는가. 


언제부터 개구리가 무서워졌느냐면 아마 그렇게 태어났을 거다. 그런데 그 공포에 불을 당긴 사건은 어릴 적만 봐도 몇 번이나 있다. 한번은 할머니랑 동생하고 동네 슈퍼에 갔다 오는 길에 길 복판을 너무 태연자약하게 가로지르던 내 발바닥만한(신발사이즈 275) 두꺼빈지 개구린지 하여튼 뭔가가 가다 말고 갑자기 멈춰 서서는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게 아닌가. 진짜 죽어라고 튀었다. 그 다음번엔 자전거 끌고 산에 가다가 뭐가 물컹해서 보니까 개구리가 바퀴에 깔려 있지 않나, 동생하고 작대기 하나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가 골목을 딱 돌았는데 담벼락에 붙어 내장은 다 튀어나온 채로 썩어 죽어가는 맹꽁이 시체가 있지 않나, 마당 담벽에 기어올라서 말타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구멍에서 고개를 쑥 내밀지를 않나. 한번은 미친 동생놈이, 비닐하우스에 할머니 일 하는 거 구경 가 있었는데 어디선가 청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다 눈앞에 들이미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서 발을 헛디뎌 논두렁에 굴렀었다. (훗날 동생은 사슴벌레 애벌레를 아버지 얼굴에 들이밀었다가 싸대기를 맞는다)


뱀은 괜찮다. 귀엽기도 하다. 벌레도 좋다. 지네니 돈벌레니 바퀴벌레니 다 상관없다. 도마뱀도 그렇고. 나방도 거미도 잠자리도 다 상관없다. 근데 개구리는 아니다. 다 크고 나서는 개구리 같은 거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몇 년 전에 (전) 여자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길 한복판에 갑자기 튀어나온 개구리 때문에 체면이고 나발이고 여자친구고 다 뿌리치고 그냥 반대쪽으로 미친듯이 달리다가 정신을 차려서 돌아가 보니 어마어마하게 삐져 있었다. 아마 그것도 정나미가 떨어진 이유 중 하나였을 거야. 뭐, 이건 지난 일이니까 잊어버렸다고 치고,


내가 왜 오밤중에 구구절절 개구리 얘기를 하고 있느냐면, 방금 한 마리 또 봤기 때문이다. 2019년에.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산책을 갔다 오는 길에 핸드폰을 보면서 분리수거장 앞을 지나가려는 참이었는데 뭔가 저편에 있었다. 인간 진화의 원동력인 생존본능이 이성을 찍어누르려는 걸 간신히 막고 있었는데 그게 꿈지럭거리면서 기었다. 그놈의 다리, 접힌 다리가 펴졌다 움츠려졌다 하는걸 보자마자 바로 뒤돌아서 담을 넘어 도망가다가 발목을 접질렀다. 스마트폰을 조금만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더라면 심장마비가 왔을 것이다. 아님 발작이 오거나. 간신히 살아서 진짜 군대에서도 안 해본 사주경계를 하다가 아파트 현관에 오자마자 미친듯이 번호를 눌러서 들어왔다. 손이 아직도 벌벌 떨린다.


이제 산책도 못 나가고, 비가 오고 난 뒤의 맑은 공기도 못 마시겠지. 병에 걸려 죽으면 이것도 다 개구리 탓이다. 여러분도 조심하셔야 한다. 풀숲에 음흉하게 움츠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올라서 맨다리에 철썩 달라붙을 것이다. 아님 뭐 어디든지. 어디로 튈 지 모를 짐승이니까. 나는 여름이 개구리 다음으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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