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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Aug 19. 2019

W에게서 산 꿈

무지하게 더운 날이었다 - 해가 지고 나서야 나는 산책을 나섰다. 아무튼 허리는 가끔 가다 펴 줘야 하는 법이다. 흐리고 구름이 많아 습기가 금방이라도 비가 되어 쏟아질 듯 살갗에 달라붙었고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흘끔거리며 서성였다. 상어에게는 눈물이 있어서 볼을 따라 흘러내리네, 그러나 상어는 물 속에 살아서 아무도 눈물을 보지 못한다네.


모자를 눌러쓰고 핸드폰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타령을 따라 부르며 어떤 늙은이가 저만치 앞에서 걷고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는가 했더니 엄청나게 큰 박쥐였다. 아마 꼬맹이 두셋은 잡아먹었을 터이다, 좋은 일이다, 나는 꼬맹이가 싫다. 몰래 훔쳐보는 꼴을 보이기 싫어서 핸드폰에 눈을 박아넣고 옆을 나란히 걸었다. 박쥐는 혼자서 씨발, 존나 덥네, 목은 뭣같이 쪼이고, 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늙은이는 듣지 못했는지 들은 척을 하지 않는 것인지 성큼성큼 걸었고 나도 덩달아 발걸음이 빨라졌다. 박쥐가 배려 없는 보폭에 치여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엉금엉금 발톱이 날린 날개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박쥐는 텅 빈 눈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늙은이는 아랑곳하지 않아서 연기가 뒤로 날아갔다.


버드나무 한 나무 토끼 한 그루 쪽배를 저어 천안 삼거리에


그 때, 키가 족히 삼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길고양이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빛났고 3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끼야옹, 하는 괴성과 함께 고양이는 박쥐의 머리를 똑 하고 물어뜯었다. 아야, 아야, 아야, 아파요, 아파, 


그러나 소리는 곧 사라졌다. 


나는, 이 꿈같은 광경에 홀린 듯이 따라갔다. 고양이는 박쥐가 매여 있던 목줄을 능숙하게 풀더니 제 목에다 차고 늙은이의 다리에다 몸을 비볐다. 그제서야 늙은이는 타령을 멈추고 아래를 - 위를 - 내려다 - 올려다 보았다.


자연으로 돌아갔군, 어쩔 수 없지, 따위의 소리를 하며 모자를 쓴 늙은이와 거대한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가서 맥주나 먹고 일찍 자야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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