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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Sep 14. 2019

담양 기행 - 2

1.


잔뜩 술을 먹고 일찍 잠들었지만 바람 소리가 귀곡성마냥 귀를 괴롭혔다. 새벽에 잠시 깨 보니 천장 뚜껑이 날아가 있었다. 2층이었는데. 얕은 비가 내렸다 말았다, 이후 대부분의 일정은 비때문에 죄다 취소된다. 그나마 재밌어 보이는 곤충체험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언노운 호텔>은 꼭 이글스의 히트곡 같았다.


승일식당이라는, '담양의 5대 권력자 중 하나'가 운영하는 숯불갈비집에 갔는데, 친구 왈 돈을 어찌나 많이 벌었는지 문짝에다 온통 금칠을 했단다. 과연, 휘황찬란한 입구를 지나자 오전부터 분주하기 이를 데가 없다. 밑반찬도 정갈하게 셋팅이 미리 다 돼있었고 직접 구워 먹는 식이 아닌 다 구워진 갈비가 나오는데 내입맛에 좀 짜긴 했어도 훌륭했다. 값도 서울에 비하면야 월등히 저렴하고. 한식대첩인가 어디 나왔던 분이 하신다고 한다. 심지어 커피자판기도 세 대나 있었으니 얼마나 장사가 잘 되고 성공한 집인지는 익히 짐작하시리라.

(양파겉절이가 맛있었음.)


2.


곤충박물관에 도착하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 셋을 보더니 살짝 당황한 얼굴로 아드님은, 조카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이렇게 셋인데요, 하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여기 오래 일했지만 남자 셋이 온 건 처음이요'한다. 우리도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어른 요금이 5천원에 애들 요금이 만원이다. 보통 반대라고 생각했지만 싸니까 뭐.


과연,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굼벵이, 밀웜, 귀뚜라미 등 식용곤충은 물론이고 누에니 꽂게니, 두 구역 중 하나는 아예 파충류 구역으로 온갖 뱀이며 도마뱀, 거북에다 개구리까지 있었고 그걸 하나하나 다 만지며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손님이 잘 오지 않는지 아니면 그냥 심심하셨는지 굉장히 열의가 넘치는 직원 한 분께서 퀴즈도 내 가면서 설명을 하셨고 Y형은 강의라도 듣는 듯 열심히 들었다. W와 나는 한눈을 팔다 가볍게 꾸중까지 들었고. 하기사 나도 말 안듣는 애송이 관람객들보다야 열심히 사진까지 찍으면서 듣는 어른 관람객들이 더 좋겠다. 하여튼 농촌진흥청의 식용곤충 프로젝트에까지 듣고 나니 파충류관. 풍채가 좋고 목소리가 가는 젊은 알바생이 뱀이며 도마뱀들을 하나하나 꺼내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무냐고 물으니 문다고, 아프냐 물으니 아프다고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는 게 웃겼다.

(나는 햄스터로소이다의 등장생물 도마뱀의 모델, 사바나모니터. 주인공 햄선생 모델 골든햄스터도 있었는데 다 자라면 그렇게 크는지 나도 처음 알았다. 어른 주먹만 하더라.)


다리가 지나치게 많은 노래기에 W는 실시간으로 고문을 당했고 물이 높아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쉬던 거북이도 있었다. 설카타거북은 굉장히 크더라. 제대로 키우려면 3대가 붙어 똥도 치우고 밥도 줘야 한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던 앵무새 세 놈이 산지 이틀밖에 안 된 셔츠를 색이 화려해 제 동족인줄 알았던지 자꾸만 날아와 덮쳐 물어뜯었다. 쫓아내 달라니까 직원은 자기도 무섭다면서 쓰레받기를 하나 주더라. 그걸로 쫓아내라나. 집에 와서 보니 어깨죽지에 실밥이 터져 구멍이 나 있었다. 찾아보니 썬 코뉴어라는 종으로 분양가는 30만원을 호가한다. 말인즉슨 앵무새 세 마리에다 설카타 거북 한 마리를 들고 날았으면 세 건달패는 다음 여행을 동남아로 갈 수 있었단 소리다.


론 나는 모범시민이니 그럴 배짱은 없었지만.


하여튼 어마어마하게 유익하고 실속있고 교육적인 시간이었다. 동물들은 참 안됐다 싶었지만서도. 애들은 내장을 터뜨리고 자는데 자꾸만 깨워 쿡쿡 찔러대고 소리도 질러대고 유리창을 쾅쾅 쳐대지, 어른들은 고아먹을 생각이나 몰래 훔쳐갈 생각이나 하고 있을 테고. 그래도 얌전히 보기만 할 생각이라면 정말 적극 권장하고 추천하는 바다. 각종 표본도 있고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표본은 16만원에 판매중이다. 더럽게도 비싸더라.


3.


널찍한 주차장에서 운전연습을 좀 하다가 내킨김에 장롱 문짝을 열어젖히고 있는 면허증을 다시 소환하려 다음 목적지까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비가 오는데다 시골길은 꼬부랑꼬부랑, 뒷차는 느리게 간다고 빵빵댔으나 W형의 친절한 어드바이스 덕에 무사도착. 중간에 도랑에 바퀴가 빠졌으면 나도 같이 머리부터 빠졌겠지만.


가마골 생태공원은 문을 닫았고, 뭔 추억의 거리도 문을 닫았고, 산성은 오르기 싫었고, 버기카 탑승장도 장사를 안 하는데 경비행기랑 패러글라이딩은 어림도 없었다. 담양프로방스라고 유럽풍으로 꾸며 놓(을 예정인)은 곳은 볼게 하나도 없었고 입구에서 처량한 아저씨 두 명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색소폰 소리가 음이 죄다 틀리는 게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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