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코뿔소 Sep 14. 2019

담양 기행 - 3(끝)

1.


결국 할 것이 없어 국수나 먹기로 했는데, 진우네라는 50년 전통의 국숫집에는 이미 원조 진우의 3대짼가 자손이 운영중이라고 했다. 메뉴는 딱 두 개, 멸치국수와 비빔국수. 구운 계란 네개까지 해서 만오천원이었나. 놀랄 만큼 맛있었고 국물도 시원했다. 보통 먹는 소면보다 면이 좀 굵던데 얼라 머리통만한 스뎅 그릇에다(추억!) 가득 담겨 나온다. 다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매미가 귀청이 터져라 울어제끼기 시작했고 햇살이 뜨거웠다. 전날 삼발이 전동자전거로 신나게 재미를 본 우리는 비도 그쳤겠다, 아예 한 대씩 따로 빌려 <매드 맥스>를 찍기로 했는데 주인장은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우리는 잔뜩 흥분했다. 질주할 것이다. 전동자전거는 생각보다 굉장히 빨랐다. 나야 여주에서 시속 50까지 나오는 ATV를 자주 타곤 하지만 이건 최대가 25까지밖에 안 나오지만서도 빗길이라 길이 질척거렸고 일단 가속이 어마어마하게 빨리 붙었으며 두 바퀴라 안정감이 덜하다.


어쨌든 하이바까지 쓰고 출발선에 섰는데 W가 보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주인과 무슨 실랑이를 하고 있다. 왜 그러냐니 못 타겠단다. 어찌저찌 언덕길을 내려와 우리가 타는 법을 한참 설명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중년 부부가 우리를 재미있게 바라본다. Y형이 '자전거랑 똑같은데. 너 자전거 못 타?'라고 묻자, '예, 못 타요.' Y형과 나는 동시에 '못 타?'라고 소리쳤고 옆에 있던 부부는 폭소를 터뜨리고 민망했던지 사라져 갔다.


2.


그 뒤론 쭉 자전거 강습이었다. 인심이 좋은건지 담양의 어르신들은 허허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거셨고 우리는 끊임없이 기운을 북돋으며 기술을 전수했지만, 글쎄, 자전거란 게 백날 들어봤자 몸이 어느 순간 어 된다!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못 타는 물건이 아니던가. 모기가 발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었고 나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1시간에 2만 5천원인데.

'멈추면 넘어진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넘어지지 않는다, 속도를 내야 오히려 안 넘어진다'란 말은 탈 줄 알면야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서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날 엿먹이려는 수작인가?라고밖에는 들리지 않을 터, 그렇지만 '우리는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다'라는 정신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느 순간부터 불안하긴 해도 10m, 20m, 50m, W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고 우리는 환호의 괴성과 욕설을 질러대며 그의 뒤를 쫓았다. 한시간 반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아, 그 뿌듯함과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란. 그때 주인에게 대체 어디냐고 호통에 가까운 전화만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세상 끝까지 달려갔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람들이 왜 오토바이 동호회 같은 것 드는지 알 것 같다며 차로 향했다.


3.


W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담양을 떠나 다시 서울로. 길은 멀었지만 주다스 앨범을 다 듣고 나자 도착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실 우리야 술 먹고 낚시하러 다니는 건달패로 경치보다는 체험이 더 맘에 맞았으니, 메타세쿼이아길이니 죽녹원이니 썩 대단한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제대로 놀고 왔다. 돈은 무지하게 썼지만,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본다. 혹시나 방문하실 분이 계시다면 지극히 주관적인 추천 및 코스. 어차피 좁아터진 동네라 하루면 다 볼 수 있다.


죽녹원 : 여름엔 모기투성이.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다. 죽공예 체험은 미리 예약해야 된다는데 가봤자 대나무 바구니나 짠단다. 내가 유비야?


관방제림 : 강을 따라 쭉 펼쳐진 3-400년 된 나무들이 우람하다. 산책만 해도 좋고 전동스쿠터나 자전거를 빌려 타도 좋다. 길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아니, 빌려 타라. 시간당 15~25천원. 면허가 있어야 하긴 한데 검사는 안 하더라.(물론  있다)

다리쪽에 죽공예 및 기념품가게가 있는데 별로 비싸지도 않고 귀엽고 사람 잘 따르는 고양이 가족이 있다. 대나무 생맥주도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저렴. 병당 4-5천원이었던가. 다만 강가에 미친 거위새끼들이 천지에 똥을 싸질러놓고 사람만 보면 물려고 덤빈다. 낚시 좋아하시면 쏘가리 배스도 많이 잡더라.


진우네 : 국수집. 국수거리에 있는데 싸고 놀랄만큼 맛있다.


승일식당 : 숯불갈비 300그램에 11천원. 재료가 신선하고 아주 맛있다. 양도 굉장히 푸짐, 전국 배달도 가능.


영화루 : 이건 친구 부모님 가게라 추천하는 게 아니고 여지껏 가본 집 중에서도 최고 축에 든다. 가게가 좀 낡긴 했는데 모든 메뉴는 주문시 조리시작인데다 재료도 신선하고 무엇보다 맛있다. 토하고 배 비운 채 처음부터 또 먹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다. 가격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합리적이다. 류산슬, 볶음밥 특히 추천.


용마루길 : 인공폭포에 담양호에 장관이 따로 없다. 물이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아스라이 산허리엔 안개가 걸린 것이 신비롭다. 다만 밤에는 절대 가지 말 것. 가더라도 물 위에 뜬 여자의 머리는 애써 모른척 할 것. 낮에 가더라도 등산로가 꽤 길기 때문에(험하진 않다) 준비를 해서 가시길. 연리지도 중간에 하나 있다.


담양곤충체험관 : 앞서 말했듯이 굉장히 유익하다. 직원들도 열의가 넘치고 친절. 바로 옆에 메타프로방스도 있다. 각종 곤충, 파충류, 조류 등 체험가능. 어른 5천원 애 만원. 자녀들과 좋은 추억이 될 듯. 다만 미친 앵무새들이 당신을 동족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서 드루이드 칭호를 얻었다.


메타세쿼이아길 : 드라이브하기에 최적인 듯. 걸어가는 곳 말고 근처에 가로수로도 심어놓은 곳이 있더라. 가을에 보면 정말 로맨틱할 듯하다. 얼마 전엔 입장료가 생겼다던데, 그래도 충분히 가볼만함.


가마골생태공원 : 우리는 비와서 물이 불어 못 갔지만, 가는길에 계곡에 캠핑족도 많고 물놀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용소, 폭포 등 기암괴석이 아름다움.


호텔 언노운 : 사실상 담양 유일의 호텔. 시설 깨끗하고 신축건물이라 인테리어도 모던하고 좋다. 자전거도 아마 숙박객에게 빌려주는듯. 자전거만 있으면 대부분 어디든 갈 수 있다.


끝. 이번 글은 너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 돼버렸는데, 아마 다음번엔 여주기행으로 찾아뵐 듯. 세 건달패는 자주 놀러다닌다.



작가의 이전글 담양 기행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