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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Nov 19. 2019

블랙 코미디에 대하여

1.

찰리와 초콜렛 공장, 마틸다, 내 친구 꼬마 거인,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의 작품을 남긴 전설적인 영국의 아동 문학가 로알드 달은 국내에서는 주로 동화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진가는 사실 단편집 <맛>에 담긴 정신나간 블랙 코미디다. (정말 명작이니 일독을 권한다. 무슨 얼빠진 두 경마쟁이도 이 단편집에 나오던가? 그것도 재밌는데.) 사실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어릴 때야 모르지 커서 다시 읽고 보면 비죽거리며 쓴웃음이 지어지는 장면이 꽤 있긴 하다만, 하여튼 그가 한 말을 하나 소개한다.

'If a bucket of paint falls on a man's head, that's funny. If the bucket fractures his skull at the same time and kills him, that's not funny – it's tragic. And yet, if a man falls into a sausage machine and is sold in the shops at so much a pound, that's funny. It is also tragic. So why is it funny? I don’t know, but what I do know is that somewhere within this very difficult area lies the secret of all black comedy.' - Tales of the unexpected

'페인트가 든 양동이가 떨어져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그건 웃깁니다. 만약 양동이가 두개골을 깨트려 죽게 된다면, 전혀 웃기지 않죠. 그건 비극적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소시지 만드는 기계에 떨어져 일 파운드에 얼마 하는 식으로 팔려 나간다면, 그건 웃깁니다. 비극적이기도 하구요. 왜 웃기냐고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설명하기 힘든 영역 어딘가에 블랙 코미디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2.

버드 드와이어라는 청렴한 미국 정치인이 있었는데(절대 검색하지 말 것) 뇌물 수수 혐의에 필사적으로 결백을 주장하다가 마침내 기자회견 자리에서 봉투에 든 권총을 입에 물고 자살한다. 문제는 그게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단 거지. 어마어마한 파장이 있었고 결국 먼 훗날 결백이 증명되긴 했는데, 엄청난 비극이고 끔찍한 사건이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별 생각 없이 검색해 보다가 권총을 입에 물고 있는 사진들 가운데 누가 권총을 금관악기로 바꿔 놓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웃었냐고?

웃었다.

3.

문제는 그게 대체 왜 웃기냐는 것이다. 뒤틀린 만족감? 은밀한 도전과 반항심? 일탈의 쾌감? 죄책감에 대한 보상 심리? 문제라기보다는 원인 분석에 가까우려나.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으니 문제 쪽으로 가 보자. 블랙 코미디와 반윤리적인 조롱의 경계는 어디인가? 웃음과 비웃음의 경계는 또 어디인가? '야, 웃자고 하는 소린데'와 '넌 이게 웃기냐'의 경계는? 유머와 불편함의 경계는? 선은 대체 어디에 그어져 있는가?

스탠딩 코미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나도 자주 보진 않지만 가끔 보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그들-코미디언-은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한다. 성역에 발을 들인다. 그러다 어떤 지점에 이르면 이래도 되나 싶은, 은밀하면서도 죄책감을 동반한 쾌감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통쾌함과 짙고 어두운 낄낄거림이. Key and Peele의 스케치 중 하나를 보면, 지독할 정도로 거침없는 코미디언이 쇼를 찾은 비만, 화상 입고 휠체어를 탄 흑인 관객에게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며 다른 화제를 찾는다. 그리고 그 관객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며 나 여기 있다고, 나도 개그의 대상으로 삼아 달라고 나중엔 숫제 팻말까지 든다. 그 미묘한 불편함과 줄타기가 큰 웃음 요소다. 그걸 포착해 써낸 두 코미디언도 대단한 양반들이고.

어쨌든 분명 선은 있을 것이다.

백인 코미디언들은 N으로 시작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약자는 코미디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도 코미디의 대상이 아니다. 너무나 큰 비극도 그렇다.

선을 넘어버리면 조커가 되는 거다. 누군가 하나 총에 맞겠지.

4.

결국 '안전한' 것은 자조적이거나 구제불능의 멍청함을 대상으로 했을 때 정당성을 얻는다. 광대들은 블랙 코미디의 선구자였다. 그들의 조롱은 은밀하게 더 큰 권력을 향한다.

광대가 아닌 글쟁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쨌든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예술에는 의미가 없으니까. 오지랖, 바란 적 없는 동정, 연대, 분노, 선민의식 따위가 섞여들면 더더욱 어렵다. 부조리한 상황 앞에 놓이면 인간은 미치거나 웃어버리고 만다. 아마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닐까, 부조리는.

그런 글을 쓰는 것도 이제는 힘든 일이 되었다. 재기발랄, 기발함, 냉소, 풍자, 조롱을 엮어서 쓴다는 일이. 기껏해야 아무도 없는 방에서 뜬금없이 면전에다 대고 던지는 인터넷의 유머에 낄낄대고 만다. 말하자면 소시지 가는 기계에 갈린 인간을 씹어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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