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코뿔소 Jan 28. 2020

만약에 지옥이 있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06WwawBiJI4

만약에 지옥이 있다면, 네가 물었지

어떤 모습일 것 같아?

글쎄, 나는 대답했어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갑거나

아주 어둡거나, 아주 밝거나

대충 그렇겠지, 하고


아냐, 네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어


지옥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없어,

그저 괴롭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만이 있을 뿐이야

밤에 잠을 자려 누우면 눈꺼풀 뒤에서 생생하게 떠오르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아도 흐느끼는 소리, 비웃는 소리, 화를 내는 소리

부끄럽고 힘이 들고 후회되는 일만이 자꾸만 떠오를 거야

분명 그럴 거야


나는 웃었어, 엉뚱한 소리를 곧잘 한다니까, 하고


이제 나 혼자 남고 나니

나는 지옥이 두려워졌어, 평생 무엇도 믿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지옥에는 가고 싶지 않아

네게 너무도 미안할 것만 같아

게 못해준 일이, 후회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자꾸만 떠오를 거야

그렇지만 더욱 무서운 일은

너를 지옥에서 만나는 거야


내 앞에 선 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어떤 얼굴을 할까?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낼까?

그때도 내게 웃어줄까?

어쩌면 그게 더 괴로울 것만 같아


내가 혼자 괴로워할 때에도 손을 잡아 줄래?

비겁한 소리지만, 부탁해도 될까?

하고, 나는 어딘가 먼 곳에 있을 너를 그리워해

내가 가게 될 곳에 네가 있기를, 없기를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