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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Mar 18. 2020

번역

1.

흔히 직역과 의역을 놓고 어느 쪽이 더 옳은 번역이냐 논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업계 종사자로서 말하자면 그딴 건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Context). 예컨대 기계 매뉴얼이나 법률 조항을 번역하는 경우 가능한 한 대명사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번역한다. 마케팅 관련인 경우 적당한 창의성이 필요한데 창의성이 많이 필요한 경우 Transcreation이란 별도의 용어가 있다. 해석하자면 옮겨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일정 부분 번역자의 재량과 센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뭐가 되었든 간에 '얼마나 한국어를 잘 하느냐'이다. '나는 나의 강아지와 함께 그 길 위에서 그녀를 만나 그녀가 그 가게에서 구매한 물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것은 매우 흥미로웠어' 이딴 건 애초에 번역도 뭣도 아니다. 한국어의 틀 안에서 직역이니 의역이니 문맥에 맞게 따져야지.

그렇다면 중간 지점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의 틀에 맞게 옮기는 것이다(한국어의 저변과 경계도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일종의 현지화에 나는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표현은 표현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옮기는 것이다... out of the blue는 난데없이나 아닌 밤중에와 같이, 사모바르는 러시아식 찻주전가가 아닌 그저 찻주전자로. 후자의 경우 세계가 더욱 넓어지고 좁아지면서 별도의 주석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오겠지만.

2.

나는 반지의 제왕 번역을 정말 좋아하는데(어디 출판사 번역인지는 까먹었다) 이는 톨킨 옹이 능청스럽게 '나도 있는 이야기를 옮겼을 따름이오'라고 농을 치며 철저하고 방대한 번역 지침(아! 번역 지침!)을 마련해 두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번역가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맛깔나는 글을 읽게 되었지만.

아라곤을 보자. 인간족의 왕, 방랑자, 순찰자인 그의 이명은 'Strider'다.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음역해서 스트라이더?(최근은 죄다 이런 식이다)

아니, 답은 '성큼걸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성큼걸이 아라곤. 빛나는 것 모두가 황금은 아니며 떠도는 이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각설하고.

최근에는 이런 점이 아쉽다.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물론 외래어 사용이 필수적인 분야는 나도 알고 있지만, 가끔은 지나치다 싶다. 얼마 전(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본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좋은 영화다. 근데 굳이 제목을 그렇게 해야 했을까. <물의 형태>, 아님 아예 좀 달리 <사랑의 모양> 뭐 이렇게 해도 되지 않았을까.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도 음, 좀 촌스럽군. 하는 생각이 좀 들긴 하니까. 일본 영화처럼 셰이후•오부•워터 ~사랑은 물의 형태처럼 흐른다~ 같은 바보같은 부제 붙이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는 희대의 명번역이라 생각하지만서도.

3.

퇴근하고 나면 가끔 번역이란 일에 치가 떨릴 때도 있는데, 결국 그렇게 되긴 싫어서 나름대로 번역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뭐 내키는 대로. 나도 번역가는 아니니까(번역업계 종사자지) 공신력도 뭣도 없는 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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