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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Mar 20. 2020

번역 3


1.


가사 번역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맥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실제 업무에서는 reference나 source material이 주어진다. 말인즉슨, 헤드폰 번역이라 치면 실제 웹사이트에서 어떻게 표시되는지, 무슨 내용인지 친절히 설명을 해 준다는 뜻이다. 노래 가사에는 그딴 것이 없다. 참조할 수 있는 거라곤 위키피디아나 인터뷰, 곡이 쓰여진 시대상, 뮤지션의 개인적인 상황 따위가 전분데 그마저도 없으면 골치가 참 아프다.


가사는 내 생각에 일종의 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시. 많은 부분이 생략된다는 뜻이다. 생략만 되면 다행인데, 문법에조차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내가 좋아하는 존 프루시안테의 가사를 보자.

https://blog.naver.com/waspyoo/221436376896


'Love to aim at besides

Lever pulled

Go where you are little pond

Never be seen by your saw

We'll work it out'


이해가 가는가? 번역을 해 보자.


1행: to는 부사적 용법이나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목적이나 (의미상)미래형 시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besides를 노리는/향하는/겨냥하는 사랑. 이거야 일단 넘어갈 수 있다.


2행: Lever pulled. 레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넘어가자. 흔히들 하는 소리(동시에 가장 짜증나는 소리)인 '가사는 해석에 열려 있다'로 넘어갈 수 있다. 당겨진 레버. 좋아.


3행: 당신이 작은 연못인 곳으로 가(imperative; 명령형). 연못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문학의 영역이다.


4행:

제일 지랄맞다. 일단 by는 전치사고 뒤에 명사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saw는 명사가 아니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saw는 톱도 격언도(격언이란 뜻으로 쓰이기나 할까?) 아니다. 그런데 뒤에서 seen이나 saw가 see의 시제 변형으로 여러 번 나왔으니 see의 과거형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 별 수 있나? '보았음'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에서도 저런 용법으로 사용되는지 나는 모른다. 물어볼 수도 없다. 프루시안테는 아마 약을 잔뜩 빨고 저 가사를 썼을 것이다.



2.


그래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방법은 하나뿐이다. 노래에는 문학과는 달리 음악의 3요소가 있다. 화음, 리듬, 하나는 뭐더라. 하여튼 구절이 끊기는 부분을 한 문장으로 치는 것이다. 호흡이 끊기는 부분을. 그럼 관계대명사나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대충 구분이 가게 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Meat-eating orchids forgive no one just yet

Cut myself on angel hair and baby's breath


Cut - cut - cut이니까 cut이라는 동사의 주체는 Meat-eating orchids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왜? no one just yet 다음에 끊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2번째 행의 주어는 생략된 I다. '(나는) 천사의 머리칼과 아기의 숨결에 베였어'가 된다.


또 다른 방법은, 뭐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보컬로 판단하는 것이다. 화자가 바뀌니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구분이 보다 쉬워진다.


3.


가사 번역은 해도해도 어렵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번역할 수 없는 것은 없다'라는 명제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할 수 없는 '단어'는 있다(당연하지!). 그러나 번역할 수 없는 문장은 없다. 그건 그냥 게으름이거나 능력 부족이다. 모든 것은 번역할 수 있다. 어떻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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