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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Apr 10. 2020

석양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뭐 수학여행을 간다거나 하면 낮에는 괜찮다가도 해질녘만 되면 미칠듯한 향수에 걷잡을 수 없이 울어버리곤 했었다. 또 밤이 되면 다시 괜찮아졌지만. 아마 초6까진 그랬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지독한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그때는 아직 이름을 붙일 줄 몰라서 그랬으려나.

어른이 되고 나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서야 석양을 봐도 약간 쓸쓸해질 뿐 울지는 않게 - 못하게 되었다.

지금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와 재택근무 중인데, 별다른 산책로도 없는 자취방을 벗어나 집에 내려와 산책을 나왔더니 해가 지고 있었다.

백수 시절에는 오후만 되면 산책을 나가곤 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때는 석양에 여러 감정들이 더 붙어 있었다. 막연함, 불안함, 절망, 슬픔, 대상 없는 그리움 따위가. 외로움은 언제나처럼 그대로였고. 다양한 색으로 하늘이 물들다 떨어져 버리면 집에 돌아오곤 했다.

다시 걷는 익숙한 산책로는 뭐, 언제나와 같았다. 나도 그다지 바뀐 것 같지는 않고. 잊고 있던 싫었던 감정이 떠올라 살짝 우울해졌을 뿐이다. 아무리 걸어도 강에 실어 보낼 수도 없는 일은 있는 걸까. 애초에 강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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