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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글희 Sep 07. 2019

다큐프라임-언어폭력 개선 프로젝트

공들인 미술과 취재에도 아쉬웠던 전개


1. 생생한 현장 화면이 전하는 생동감
아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몸싸움이나 말싸움을 그대로 담아낸다. 학교에서 취재 허락을 어떻게 해줬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생생하다. 처음에는 말싸움이던 게 나중에는 몸싸움으로 번지는 과정까지 나온다. 그리고 말싸움을 하고 난 후 눈물 흘리는 아이와 무슨 말을 뱉었는지를 기억 못 하는 아이, 둘의 대조적인 태도도 잡아냈다. 현장을 그대로 발췌해왔기에 다큐멘터리의 특성인 생동감이 살아있다. 또한 취재진이 아니었더라면 대중들이 들여다보지 못했을 생소한 장소, 예를 들면 소년원이나 외국,까지 취재하면서 흥미를 돋운다. 시청자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중개해주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수행한다.

2. 내레이션이 너무 많다
생동감이 있어서 흥미롭다가도 내레이션이 너무 많다. 과도한 내레이션은 시청자의 수용능력을 믿지 못하거나 기획자의 능력 부족을 의미한다. 시청자의 수용능력을 믿지 못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충분히 화면에 제시된 현장 화면만으로도 아이들이 격앙된 모습을 알 수 있는데 내레이션으로 한 번 더 굳이, 아이들이 격앙됐습니다는 설명을 덧붙이는 건 시청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까 봐 과도하게 친절한 것이다. 또한 내레이션 없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다는 건 기획자가 처음부터 단단한 논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부의 서사나 흐름이 튼튼한 영상이라면 내레이션을 통한 디렉션이 조금 적더라도 충분히 시청자가 그대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내레이션은 시청자의 생각을 제한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시청자의 생각을 몰고 간다. 과도한 내레이션은 시청자가 화면을 통해 자기 생각을 하는 것을 방해하고 끊임없는 수용만을 하도록 만든다. 재미는 웃긴 상황이나 개그코드가 있어야 할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수용자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하게 될 때도 발생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과도한 내레이션이 수용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지나치게 여러 번 증명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옛날 다큐멘터리이기도 해서 언어폭력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하는 사회적 조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성 증명에 너무 많은 분량을 쏟았다. 소년원을 취재해서 욕이 유발하는 물리적 폭력을 이야기하고, 피부 자극 실험을 통해 욕이 우리의 자율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고, 언어폭력이 따돌림에서 가장 높은 비중임을 제시하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을 그대로 담으며 심각한 상태임을 또 제시하고 ... 심각성을 일깨우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나 대안으로 향하는 연결이 약하다.

4.  통일된 영상보다는 분절된 영상
내레이션이 직접적으로 왜 이렇게 욕을 많이 쓸까요? 하고 물으면 전문가가 등장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원인을 말한다. 누구는 스트레스, 누구는 억압적인 사회, 누구는 승부에 집착하는 문화... 그저 나열된 원인들은 시청자에게 어느 단일한 원인을 선택하거나 숙고해볼 기회를 주지 못한다. 깊이 있게 집중해서 보지 않는 시청자라면 다큐멘터리가 분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거 같으면서도 그래서 왜?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껑충, 존중 그리고 대화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언어폭력이 심각하니까 존중하는 대화를 해야 해요. 아무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청자가 어느 정도의 영상 간의 단절을 감안하고 본다 하더라도 내용상 통일적인 느낌이 적다. 여타 장르, 드라마나 예능에서는 끈끈한 서사와 장치를 통해서 스토리가 전개되며 시청자도 붙잡아둘 수 있는 반면 유독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힘이 약하다. 실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5. target audience는 학교 선생님뿐이다.
언어폭력이 심각하고 환경을 바꿔야 한다면서 학교가 바뀌어한다고 지목한다. 그에 따라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대안적 형태의 교육 상황을 제시한다. 여기에 선생님 이외의 시청자들이 끼어들 구멍이 너무 작다. 선생님들 워크숍에서 틀어주는 영상과 같다. 그렇다고 선생님 한 명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너무 많은 시청자들을 배제시켰다. 차라리 첫 화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지목한 게 더 넓은 타깃을 가졌는데 다만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 지라든지 언어폭력과 대화는 어떻게 다른 지가 더욱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아쉽다.

6. 언어폭력에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이 혼재되어 혼란스럽다.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말하지만 명확한 개념은 제시되지 않는다. 조롱, 무시를 포함하는 것들인 것 같은데 현장 화면에서는 욕설만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한국 학교 현장에서 제시된 대안도 욕설을 쓰지 않는 것 정도다. 제목은 언어폭력 개선인데 계속해서 다큐멘터리는 욕에만 초점 맞춰져있다. 결국 언어폭력의 심각성보다는 욕을 하지 말자 정도의 주장만이 관철되고 있다.  전문가 인터뷰 중에서 욕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만 알고 지도 방향을 모르겠는 것이죠라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다큐멘터리도 결국 그 모양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학교를 주된 언어 습득의 현장으로 지목하면서 학교폭력과 언어폭력이 또 혼재된다. 따돌림을 언급하면서 혼재가 강화됐다. 다시금 대화와 언어폭력의 차이를 잘 짚었더라면 이러한 혼재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ㅠ ㅠ

7. 심각성 제시를 넘어선 대안으로의 매끄러운 연결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설명에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소개가 있었고 실제로 다큐에 대안적으로 보이는 공간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대안이라고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데에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게 제시됐기 때문이다. 원인을 스트레스나 억압, 좌절의 반복이라고 지적해놓고는 대안으로 대화와 존중을 제시하면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물론 다큐멘터리라는 게 취재를 하다 보면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고 원인을 스트레스라고 지적했다고 제도적 분위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갭을 메울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의 취재 시점을 다르게 잡아둔다든지... 소재를 잡을 때부터 적어도 이러한 핵심 포인트는 잘 잡아둬야 하지 않나 싶다!

8. 셔레이드와 같은 다양한 미술 
여러모로 아쉬웠던 다큐이지만 제작진들이 노력한 게 보이는 다큐이기는 했다. 특히 셔레이드가 많이 등장했는데 시계, 학교 의자, 물컵, 수조, 도미도 등의 소품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도미노의 경우는 도미노를 이용한 실험을 전개하고 첫 화의 마지막에는 도미노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한 연기도 많이 등장했었는데 다큐의 시작할 때나 중간중간에 재연이 들어가면서 미처 취재로는 잡아내지 못했지만 필요한 부분들이 연기로 대체됐다. 그래서 많은 자원이 투여됐을 거라는 생각....

+ 화면은 현장화면, 인터뷰화면 (전문가, 시민, 현장인터뷰), 표, 연기, 미술화면, 언론보도가 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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