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에서는 라미란 여사의 폐경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유 없이 화가 나며 다 싫고 괴롭다. 정환이네 가족이 라미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라미란 여사와 남정네 셋이 사는 집에서 누가 라미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나는 많이 울었다.
에피소드를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아마 2013년 쯤 해서 폐경이 온 것 같았다. 당시에는 무기력해서 짜증을 낼 힘 조차도 없는 엄마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어서 말을 조금 더 잘 들으려고 했었다. 결국 나중에 엄마가 폐경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2013년의 어느 가을이었다. 엄마에게 가디건을 하나 사달라고 얘기했는데 평소의 엄마와는 다르게 흔쾌히 알았다고, 사러 가자고 말하더라. 이게 어쩐 일인가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됐다고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가디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엄마가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창 밖을 내다보며 엄마는 살기 싫다고 했다. 너무 놀란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엄마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아껴서 뭐할 거냐고. 나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우린 그렇게 창 밖을 내다보며 집까지 갔다.
그 때부터 엄마랑 데이트를 즐겨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 엄마의 쇼핑을 따라가고 했던 일이 다 그 때부터 시작됐다. 물론 마음처럼 자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 받은 영화 티켓은 고스란히 엄마 손에 쥐어주고, 보고 싶다는 영화가 있다고 하면 예매도 해둔다. 엄마는 어디 멀리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 구경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엄마와 함께 고궁을 둘러보고 싶다. 엄마 사진도 찍어주고 싶다.
우리 엄마 지금은 괜찮을까. 지금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에 엄마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린다. 너 이제 가면 누가 엄마 영화 보여주냐고, 이제 영화 보여줄 사람 없다고. 한국에 가면 엄마랑 영화 많이 봐야겠다. 영화도 많이 보고, 멀리 놀러 가기도 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엄마가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어야겠다.
곧 있으면 우리 엄마 생일이다. 우리 엄마는 무엇이 가지고 싶을까. 엄마가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것 하나 보내주고 싶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항상 말을 해주어서 고맙다. 엄마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정도를 해소해줄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 엄마, 언제나 어린 애처럼 갖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거 다 사주려고 부지런히 살게 될 테니까. 우리 엄마 없이는 내가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