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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May 18. 2020

그곳에 상처받고 고통 받고 죽임당한 사람이 있다

김군(2018)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유린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은 똑같은 패턴을 띈다. 물리적 폭력, 폭력으로 인한 육체적 후유증,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가족 공동체의 파괴이다. 통상 고문을 통해 강제로 빨갱이를 만든 후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썼기 때문에 고문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매우 크다. 특히 트라우마 문제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이다. 


대부분의 피해 당사자들이 수십년이 지나도 기억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개인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이 가족 공동체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점. 일종의 낙인 효과인데 부부가 이혼을 하거나 동네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면서 지역 공동체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소설가 이문열이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경찰의 감찰에 시달려온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5.18의 충격적인 특별함


1980년 5월 18일부터 약 10일간 벌어진 광주에서의 참극. 그로인한 피해자들 또한 마찬가지 과정을 겪어왔다. 하지만 사건 자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전의 통상적인 국가 폭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군대에 의한 발포. 4.19혁명 당시에도 경무대로 행진하던 시민들을 향하여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이루어져서 1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다. 


하지만 광주에는 군대가 쳐들어왔다. 전라북도를 지키는 35사단과 전라남도를 지키는 31사단 그리고 직업군인으로만 구성된 공수여단이 <화려한 휴가>, <상무충정작전>이라는 거창한 군사 작전을 함께 실시하였다. 대검에 의한 살해, 앉아쏴 자세의 집단 발포, 헬기 기총 사격 등등. 믿기 힘든 사실에 더하여 최근에는 전투기와 해병대 대기까지 조사 보고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더구나 시간은 광주의 편이 아니었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은 당당하게 승전가를 울리며 마무리 되었다. 경찰 발포 책임자가 처벌당했고,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했고, 민주화는 쟁취되었다. 하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만큼은 달랐다. 가공할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고 이 후 7년간 전두환 정권은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 수많은 거짓 문서를 작성하였다. 


다시 5년간 노태우 정권은 ‘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이름만 바꾸어주었을 뿐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외면하였다. 김영삼 정권들어 비로소 위상에 걸맞는 조치들이 취해졌지만 1997년 재판 2년 만에 전두환, 노태우 등에게 사면!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은 조금도, 여전히 손상되지 않았으니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 뿐더러 1980년 그날의 고통에 관해 세상은 충분히 공감해주지 않았다.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지만원과 <김군>


2000년대 들어 희한한 현상까지 더해진다. 극우적 정서로 무장한 이들이 교회나 민간단체에 암약하며 세력을 형성하였고 적당한 시점에 보수 매체를 통해 5.18에 관한 각종 가짜 뉴스와 혐오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5.18은 북한군의 소행이다? 당시 북의 도발에 대한 동향 보고는 일본 쪽 루트를 통해 들어왔다. 


하지만 신군부가 이를 허위로 판단했고 광주를 한참 진압 중이던 5월에는 남북한 고위급회담이 비밀리에 진행 중에 있었다. 서해를 가로질러 전라남도까지 600명의 무장공비를 보내 소요를 일으키는 나라와 고위급회담을 진행한다? 온갖 악의적 유언비어는 조잡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횡횡하며 그 위세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 <김군>은 이 지점에서 불쑥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만원이 주구장창 주장하는 북한군 특공대의 일원이자 장갑차로 무장한 그 김군이 과연 그 김군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걸음걸이가 북한식이기 때문에?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기껏해봤자 컴퓨터 화면 앞에서 마구 찍어내고 단정하는 지만원식의 주장이 아니라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지고 직접 만나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군을 찾아 나선 것이다. 


김군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군과 김군 사이 수많은 광주 시민들은 40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 실존의 무게를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김군>은 결코 과장되지 않게 그렇기 때문에 아주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관철시켜나간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상처받았고 고통 받았고 일부는 죽임 당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이다. 역사학자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관찰하느라 사람을 놓치고, 진상규명 조사위원들은 객관적이고 명징한 증거를 찾아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은폐한 이들을 단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의 책무가 지닌 뼈져린 약점이고 한계이다. 언제나 영화는 이러한 학자 나부랭이들을 앞서간다. 영화 <김군>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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