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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May 15. 2020

사이다보다 고구마를

배심원들(2018)



그러니 여러분들은 사이다를 멀리하고 고구마를 드시는 게 낫습니다


홍승완 감독의 영화 <배심원들>(2018)은 여러모로 시드니 루멧의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을 닮았다. 무죄를 주장한 단 한 명의 배심원이 나머지 전원의 생각을 뒤집어 존속살인 사건의 재판 결과를 바꾼다는 점부터, 그 단 한 명의 배심원이 8번 배심원이라는 점까지, <배심원들>을 보면서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뇌리에서 지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8번 배심원 데이비스(헨리 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논리정연한 언변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며 동료 배심원들을 설득했던 것과 달리, <배심원들> 속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는 종종 논리의 벽에 가로막힌다. 데이비스가 속한 배심원단에서 가장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무죄를 주장하는 데이비스인 반면, 권남우가 속한 배심원단에서 가장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유죄를 주장하는 대기업 비서실장 최영재(조한철)다. 


데이비스가 제기한 증거나 근거들은 모두 무죄의 가능성을 강하게 설득하지만, 권남우의 제안으로 실험한 것들은 자꾸만 피고인 강두식(서현우)의 유죄의 가능성을 더 강하게 암시한다. 계속 뭔가 미심쩍어서 실험을 제안할 때마다 뭔가 더 유죄에 가까워지는 이 환장할 상황. 하지만 권남우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혹시, 무죄인 거 아냐?



그래도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며 유무죄 투표를 거부하는 권남우를 보고, 답답해하던 4번 배심원 변상미(서정연)는 만장일치 평결 대신 다수결 처리를 하자고 제안한다. 배심원 대표 윤그림(백수장)이 “이 분이 유무죄 투표를 아예 안 하신다고 하시니까…”라며 말을 흐리자, 변상미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달려들어 말한다.


“아니, 아무리 설명해줘도 싫다는 사람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쯤은… 기권처리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다 같이 시간 내서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의견이 다 지금 무시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건… 또 다른 폭력 아닌가?”


권남우가 데이비스만큼 철두철미하고 논리적인 언변의 소유자였거나, 최영재처럼 수트를 쫙 빼 입은 엘리트였다면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았을지언정 그를 빼고 투표하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미심쩍음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는, 후줄근한 청색 후드 재킷 차림의 권남우는 쉽게 무시당한다. 변상미의 본심이 그저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 아니냐며 그의 편을 들어준 오수정(조수향)이 아니었다면, 남우는 진작에 기권처리 되지 않았을까? ‘소수의 횡포’, ‘다수결의 원칙’, ‘민주주의’ 같은 수식어들과 함께 말이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는 이들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대화로 풀어나가기보단 어떻게 하면 상대를 제대로 제압할지를 더 깊게 고민하곤 한다. 대화로 접점을 찾아가고 서로의 생각을 바꿔 나가며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일은, 말은 아름답지만 솔직히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 아닌가. 상대를 화끈하게 제압하면 그 모든 귀찮음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상대를 압박하고, 상대가 지적 권위를 내세울 만한 배경이 없다며 “모르면 그냥 외우라”는 말로 윽박지르고, 상대를 생각을 꺾지 않는 고집불통 광신도라고 몰아 세운다. <배심원들> 속 최영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직접 그렇게 할 여력이 안 될 때면, 대신 그렇게 해주는 이들을 향해 ‘사이다!’라고 외치며 열광한다. 최영재를 보며 변상미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권남우처럼 지적인 권위도 없고 제 의견의 근거를 명확하게 대는 데도 실패한 사람과도 충분히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 법이다. “다수결의 원칙”보다 중요한 건 소수파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반영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토론의 자세이며, 지적 권위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의사를 표시할 권리를 평등하게 지닌다는 대원칙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오류의 발생확률을 줄인다는 점에서 몹시 효율적인 체제다. 원활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걸림돌처럼 여겨지는 권남우 같은 존재들이, 사실은 우리가 끔찍한 실수를 향해 쾌속으로 돌진하는 걸 막아주는 체제의 필수요소인 셈이다.


쪽팔리지만,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이번 영화를 고른 이유를 적어둔다. 4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SNS에서 현란하게 키보드 배틀을 벌이던 나는 문득 내가 최영재나 변상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 현타를 세게 맞았다.


마치 살면서 한 번도 권남우의 자리에 안 가본 사람처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상대를 질타하며 제 풀에 열을 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더라. 그러니 귀찮고 고단하고 피곤해도 어쩔 수 없다. 사이다를 멀리 하고 고구마를 더 가까이할 수밖에. 마음 속에 참을 인자를 세 개 적으며, 말이 도통 안 통하는 상대가 궁극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더 열심히 들으며.



배심원들, 지금 볼까요?


이승한 / 칼럼니스트


열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영화감독이 되길 희망했던 실패한 감독지망생입니다. 스물넷부터 서른여섯까지는 TV와 영화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떠들고 있죠. 자기 영화를 왓챠에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남의 영화를 본 소감을 왓챠 브런치에 걸게 된 뒤틀린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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