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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un 01. 2020

영화와 오브제 : 풍선

업, 아이 엠 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업(Up)

예쁜 지붕을 이고 있는 조그마한 집 한 채가 기우뚱거린다. 집에는 알록달록 색색의 풍선들이 매달려 있고 헬륨가스로 가득 찬 풍선들은 누군가의 꿈을 잔뜩 머금은 채 땅에서 집을 끌어내려 한다. 풍선이 잔뜩 달린 집을 바라보던 통통한 소년은 이제 막 시작되려는 비행에 놀라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정직하고 착실한 소년 러셀이 우연히 찾아온 곳은 까칠한 할아버지 칼의 집이었고 그 때는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친 칼이 평생 꿈꾸어 온 모험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불청객 러셀은 그렇게 칼과 함께 예상치 못했던 일생일대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 하늘을 날아 낯선 땅에 도착해 예측불허의 모험을 펼치게 되는 칼과 러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꿈과 미소와 응원을 준다. 두 사람의 모험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성장담이지만 이 작품은 우리 모두를 한 뼘 성장시키며 우리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애니메이션 <업>의 풍선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칼과 러셀을 엮어주는 운명이다. 



# 아이 앰 샘(I Am Sam)

루시는 아빠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고 있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 하얀 선으로 칠해진 횡단보도 위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고 경쾌하게 걷고 있다. 


지금 루시는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있고 루시를 소중하게 여기고 늘 친절하게 대해주는 삼촌들이 뒤를 따라오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 모두 풍선 하나씩을 들고 있으니까. 


주황색 풍선의 판촉용 풍선. 남들에겐 보잘 것 없는 것일지 모르지만 루시와 아빠들에게는 이 풍선이야말로 그들의 마음을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들의 행복한 마음이 이 풍선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비틀즈의 앨범 자켓을 떠올리는 이 장면은 영화 <아이 앰 샘> 중에서도 백미가 아닐까. 루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 이 순간이었으리라. 


일상에서 얻게 되는 작은 행복. 소소하지만 마음을 꽉 채워주는 충만감. 우리는 늘 이렇게 기쁨으로 꽉 채워진 순간을 기다리며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아이 앰 샘>의 풍선은 우리 삶에 선물처럼 찾아오는 충만한 순간이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남자는 어리디 어린 딸을 안고 있다. 남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나는 이 아이와 얼마나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아이와 있는 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나는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남자의 이름은 벤자민, 벤자민 버튼. 그는 남들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출생은 어머니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으며 갓 태어난 그의 얼굴은 80세 노인의 것이었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벤자민의 아버지는 그를 양로원에 몰래 버리고 그는 그 곳에서 자라났다. 


어린 소년의 나이에 그는 70대 노인의 모습이었고 세상을 향해 떠나는 소년기와 청년기의 경계 즈음에는 60대의 남자처럼 보였으며 세월이 흘러 20대의 청년이 되었을 때 중년의 모습이 되었다.


데이지. 어린 시절에 만난 소녀 데이지. 그 소녀는 벤자민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고 그 소녀는 벤자민의 마음에 점점 큰 존재로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의 생의 중반 즈음이 되어 있었고 가장 아름다운 나이, 가장 아름다운 때 두 사람은 당연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함께 그들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지금 벤자민의 곁에는 데이지와 자신의 딸이 있고 지금 벤자민은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 앞에 여전히 놓여있는 타인과 다른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순간 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노란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작고 여린 손이 오래 붙잡고 있기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풍선의 의지가 강하다. 


노란 풍선이 하늘거리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아버지와 딸이 바라보고 있다. 그 풍선은 어쩌면 우리가 흘려보내는 시간과도 같다. 잡을 수 없는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 풍선처럼 우리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풍선은 무심히 우리의 손을 떠나가는 시간이다. 

당신이 쥐고 있는 풍선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업, 아이 엠 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지금 볼까요?


신지혜 / 아나운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영화음악 프로그램과 오프라인의 활동을 접목시켜 영화와 영화음악 콘텐츠를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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