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새를 사냥한다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2013)

by 왓챠 WATCHA



고양이는 유일무이한 종이다. 가축화되어 인간과 같이 살면서도 길들어지지 않는 야생 본능을 간직한 동물. ‘빅 캣(Big Cat)’이라 불리는 호랑이, 사자, 표범 등 사냥의 명수들이 죄다 고양잇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눈앞의 고양이가 달라 보일 수도 있다. 귀여운 고양이가 털실을 갖고 노는 모습이 흡사 쥐를 사냥하는 것으로 보이고, 앞발로 공 같은 물건을 내려치는 동작에서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이 연상된다.


실제로 고양이는 사냥의 시간을 즐긴다. 몇 년 전 미국 연방정부와 스미스소니언 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새의 멸종 원인 1위는 바로 고양이의 사냥이다.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만, 한해 25억 마리 이상의 새가 고양이의 사냥으로 죽는다. 작년엔 호주 해안가에서 제비갈매기 111쌍의 집단 번식지가 단 한 마리의 고양이로 인해 번식이 실패한 사례도 보고됐다.


정말 그럴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높은 수치와 평소 가지고 있던 고양이에 대한 사랑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새의 멸종 원인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부분의 가정이 고양이를 집에 가둬 놓고 키우는 한국식 반려 문화도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


역시 제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히 의심을 거두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한데 고양이의 새 사냥 장면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어렵다. 도시의 고양이들은 해당 개체가 거쳐온 환경에 따라 야생성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개보다 은밀한 고양이의 습성상 야외를 누비는 고양이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건 제약이 크다. 사냥은 순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고양이가 새를 입에 물고 다녀도 사냥의 결과물인지, 그냥 죽은 새를 주워온 건지 구별이 안 된다.


직업적인 이유로 시골 출장이 많은 나는 최근 고양이를 관찰할 기회가 생겼다. 4~6월은 여름 철새가 우리나라로 날아와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는 시기라, 여름 철새를 촬영하기 위해 새가 많이 도래하는 서해안 도서 지역을 다니는 중이다. 새가 많이 있는 곳을 가면 나만 새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도 같이 새를 따라다닌다. 나는 새를 찍기 위해, 고양이는 새를 사냥하기 위해서 따라다닌다는 것이 차이다.


주로 수로나 몸을 은폐할 수 있는 초목 같은 곳에 몸을 숨긴 녀석은 예상하기 힘든 순간에 갑자기 새를 덮친다. 물론 새들도 가만히 당하지 않는다. 고양잇과가 사냥의 본능을 가졌다면, (맹금류를 제외한) 조류는 포식자의 사냥을 피하는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 재빠른 비상과 방향 전환으로 고양이의 점프를 무력화하기 일쑤다. 사냥의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것, 이것도 한국에서 고양이가 새를 사냥하는 장면을 보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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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변수가 있다. 조건이 바뀌면 성공률도 달라진다. 이제 막 대양을 횡단해온 철새들은 체력이 바닥 상태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탈진 직전의 상태, 휴식과 먹이 활동이 절실한 때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고향에 돌아온 연어를 불곰이 노리듯, 포식자들은 이런 절호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적이 눈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새 한 마리가 해맑게 논 위를 낮게 날아간다. 수로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비상한다. 논두렁에 퍼지는 비명. 눈 깜짝할 새, 고양이는 입엔 푸드덕 되는 생명체가 들려있다. 이런 장면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됐다. 고양이가 즐겨 찾는 사냥터엔 새 사체가 쌓여갔다. 고양이는 새를 사냥한다.


BBC가 제작한 다큐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에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최신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 외출이 가능한 집고양이는 태곳적 본성에 따라 사냥한 먹잇감을 집에 물고 오는데 이 본성은 너무 뿌리 깊어서 생후 8주 만에 새끼들은 사냥 연습을 시작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생후 5주가 야생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 2주에서 7주 사이에 사람과 한 번도 접촉하지 않으면 야생성이 살아나 완전한 야생 고양이로 되돌아간다. 이 시기에 인간과 빨리 접촉할수록 인간에게 더 길들고 성장한 뒤 사회성도 좋아진다. 왓챠플레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1편)에서는 비록 고양이의 새 사냥 장면이 나오진 않지만, 고양이를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흥미로운 사실과 사례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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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못지않은 균형감을 가졌고, 고도로 민감한 감각으로 10m 밖에서도 먹잇감 소리를 들으며, 독특한 사교성을 갖춘 지구상 최고로 사랑받는 반려동물. 고양이는 인간세계에서 번성하는 비결을 찾아 인간과 함께 지구를 접수했다. 지금 이 행성에 살아가는 척추동물의 97%가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동물이다.


3%만 야생동물이다. 고양이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야생 호랑이는 전 세계에 4,000마리도 남지 않았는데, 고양이는 최소 6억 마리 이상의 개체 수를 자랑한다. (정확한 개체 수를 알긴 힘들다) 게다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뽑은 세계 100대 외래종 중 하나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행성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의 영향력을 잘 나타내는 인류세(人類世)의 한 지표로 삼을만한 종의 지위에 올랐다.


사실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겠냐. 그저 인간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을 뿐, 모든 원인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야생을 파괴하고, 동식물의 서식지를 불문한 채 멋대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옮겨다 놓고, 귀여우면 키우다 버리고, 통제가 안 되면 개체 수 조절이라는 이름으로 죽이며 그렇게 인류는 살아왔다.


종 다양성이 사라진 지구에서 이제 고양이와 공존하는 길은 집고양이의 외출을 막고(우리나라는 많은 분이 이미 잘하고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거나, 들고양이의 사냥 성공률을 떨어뜨리는 새 보호용 색깔 목도리를 씌우는 정도다(정부에서 도입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썩 믿음이 안 가는 불확실한 세 가지 선택지와 달리 확실한 건, 고양이의 야생적 기질은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고양이가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이 딜레마를 인류세의 인간은 잘 풀어갈 수 있을까.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지금 보러 갈까요?



최평순 /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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