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2000)
“여기 이 항목 보이시죠? 정상 수치를 훌쩍 넘겼죠?”
“네, 그렇네요. 이건 뭔가요?”
“이게 항목이 뭐냐 하면, 내가 힘든 걸 남들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정곡을 찔렸다. 마음이 지쳐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의사 선생은 오래 숨겨온 내 속내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줬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을 오래 살아온 탓에 남에게 제 속을 감춰온 날들이 길었던 차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한 말에 갇힌다. “무단횡단은 나빠요”라고 말한 사람이 빨간 불에 길을 건널 수 없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아이를 타일러 온 사람이 이웃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울 순 없다. 누구나 그렇지만, 말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은 그런 일이 훨씬 더 잦다. 남들보다 뱉어놓은 말이 많으니, 제약당하는 일도 더 많은 것이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고삐 풀린 이기심을 비난한 덕분에 내 잇속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게 어려워졌고, 남들을 편견 없이 대해야 한다고 말한 탓에 상대가 사기꾼 같아 보여도 일단 그냥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살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할 말도 못 하고 성질도 못 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아침이면 눈을 뜨는 게 스트레스고 밤이면 잠이 오는 게 스트레스인 지경에 이를 수밖에.
그렇다고 주변에 토로하기도 쉽지 않았다. “제 기분을 핑계로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라고 떠들어 놓은 뒤에 “그런데 내가 지금 기분이 나빠” 하며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인들 고민 상담은 혼자 도맡아 해 오던 나는, 그렇게 정작 내가 힘들 때는 그게 폐가 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랬다. 속으로 ‘남들이 나 힘든 것 좀 알아줬으면’ 하고 징징거리는 수치가 그래프를 뚫고 솟아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그런데 이게 나만 그런가? 제 욕망을 긍정하고, 그걸 주변을 해치지 않는 선까지 조화롭게 펼쳐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같이 사는 세상이기에 제 욕망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으로 푸는 방법을 고민하는 건 모두의 숙제 아닌가. 욕망을 긍정하는 게 도가 지나치면 괴물이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으면 불 줄일 타이밍을 놓친 압력밥솥처럼 굉음과 함께 뚜껑이 날아갈 판국이다. 결국 중요한 건 적당한 균형인데, 어느 정도 해야 ‘적당히’인지는 어떻게 안단 말인가?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2000) 속 로드아일랜드 경찰관 찰리(짐 캐리)도 그 균형을 찾지 못해 무너진 사람이다. 사랑했던 아내 레일라(트레일러 하워드)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며 다른 남자와 떠났고, 레일라가 남기고 간 세쌍둥이 자말(앤서니 앤더슨), 리 하비(몽고 브라운리), 숀테(제로드 믹슨)는 백인 커플 사이에선 도저히 나오기 힘든 흑인 소년들이다. 찰리는 자기 아이가 아닌 게 너무도 자명한 세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내고, 주위의 비웃음도 모른 척 속으로만 꾹 삭인다.
비웃어도 못 들은 척 삭이다 보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찰리가 참으면 참을수록, 사람들은 “쟤는 조롱해도 반격도 못 하는 놈”이라는 인식을 굳혔다. 그러기를 십수 년, 이제 로드아일랜드 주민들은 아무도 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불법 주차된 차량을 옮기라고 이야기하면 차 키를 던져주면서 “네가 좀 옮겨 대”라고 대꾸하고, 차도에서 줄넘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면전에 비명을 지르며 화를 낸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마침내 찰리는 폭발한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무법자, 행크(짐 캐리)라는 자아가 찰리를 비집고 나온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에겐 시비를 걸고, 속으로만 담아둬야 하는 험담을 입 밖으로 쏘아 대는 행크 때문에 찰리의 삶은 자꾸만 꼬인다. 사고는 행크가 치고, 뒷감당은 찰리가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하지만 행크의 말은 다르다.
“찰리가 겁쟁이 같은 춤을 춘다면, 난 박력 있는 탱고를 추죠!
봐서 알잖아요. 찰리는 종이접기 같아서 중요한 순간엔 곱게 접혀서 종이학처럼 앉아만 있죠.
쉽게 생각해요. 찰리가 사고뭉치라면 행크는 해결사죠.”
실제로 부패 경찰에게 쫓기는 주요 증인 아이린(르네 젤위거)을 호송하던 중에 뛰쳐나온 행크는 위기에 빠진 아이린을 구하고 악당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행크의 말이 맞는 걸까? 찰리가 문제고, 행크는 솔루션인가?
아니다. 찰리가 문제라면, 행크는 경고등이다. 모든 걸 속으로만 삭이고 참고 수용하며 살아온 찰리가 한 극단이라면, 그 반동으로 나온 행크는 정확하게 그 반대쪽 극단에 있다. 욕망의 분출과 폭력이 잠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길로만 가면 답은 고삐 풀린 이기심이 엉켜서 만든 카오스일 테니까. 결국 행크와의 불안정한 공존 또한 ‘적당히’ 욕망과 질서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다. 찰리라는 문제에 대한 답이 행크인 것이 아니라, 욕망을 ‘적당히’ 긍정하고 풀어가는 법을 배우라고 외치는 경고등이 행크인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문득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찰리가 그랬듯 나도 욕망과 질서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어느 선이 ‘적당한’ 균형인지, 그 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자로 잰 듯 똑 떨어지는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저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모든 이들이 그러듯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사실은 마음이 좀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과, 그걸 잘 다스려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아 헤맨 결과가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이다. 나와 여러분 모두, 가슴 속에서 행크가 뛰쳐나오기 전에 균형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지금 볼까요?
이승한 / 칼럼니스트
열두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영화감독이 되길 희망했던 실패한 감독지망생입니다. 스물넷부터 서른여섯까지는 TV와 영화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떠들고 있죠. 자기 영화를 왓챠에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남의 영화를 본 소감을 왓챠 브런치에 걸게 된 뒤틀린 인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