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의 출현

다모(2003)

by 왓챠 WAT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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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시대, 좌포청과 우포청이 격구(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승부를 가르는 전통 스포츠) 시합을 하다가 패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의 발단이 된 인물은 좌포청 소속 다모(茶母, 관에서 차를 따르는 등의 잡일을 하던 노비)였던 채옥(하지원 역).


채옥은 그 벌로 팔 하나를 잘릴 위기에 처하지만, 황보윤(이서진 역)이 나서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채옥은 검에 베여 어깨 부분을 크게 다치고 만다.


벚꽃 잎이 휘날리던 그 날 밤, 황보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검에 베인 채옥의 어깨에 약을 발라주며 묻는다.


“아프냐?”
“……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나도 아프다.”
(아리따운 배경음악)
“넌 내 수하이기 전에, 내 누이나 다름없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대사,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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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오로지 이익과 손실에만 반응하는 존재라고 가르친다. 이게 사실이라면 인간은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이유가 없다. 기쁨은 오로지 이익을 얻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이고, 슬픔은 오로지 손실을 입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존재다. 그래서 협동을 중시하는 경제학이나 진화생물학, 사회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반론을 펼친다.


심지어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끝난 이론이다.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연구팀이 처음 발견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존재가 그 증거다.


거울 뉴런이란 우리 몸속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의 일종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해 모방하는 역할을 한다. 이 덕분에 우리는 타인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부른 것처럼 느끼고, 타인이 고통을 당하면 비슷한 통증을 경험한다.


적국 스파이의 입을 열기 위한 가장 좋은 고문 방법은 스파이 본인을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의 가족을 고문하는 것이다. 가족을 고문하면 스파이는 마치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워한다. 이건 단지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다. 실제 포로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은 “극심한 육체적 통증을 경험했다”고 답한다. 거울 뉴런 탓에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느껴진 것이다.


채옥이 검에 베였을 때, 황보윤은 진짜로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심리적 고통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황보윤은 채옥에게 “너는 내 누이 같은 존재”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채옥을 사랑했다. 누이라 해도 그 고통이 강하게 전달됐을 터인데 사랑하는 사람의 칼에 베이다니, 황보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


우리 인간은 남이 아프건 말건 내 이익만 챙기면 되는 단순한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남이 아프면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존재다. 이 공감 능력이야말로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해야 한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우리 함께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아나가자”라고 말이다.



다모, 지금 보러 갈까요?


이완배 / 민중의소리 기자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네이버 금융서비스 팀장을 거쳐 2014년부터 《민중의소리》 경제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가치 있는 행복을 물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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