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왓챠 WATCHA Sep 04. 2019

할머니가 된다면 이렇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2017)



타샤 튜더에 대한 내 인상은 ‘옛날 사람’ 이상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리는 동화 삽화의 배경같은 농장에서 자급자족하는 목가적 삶. 아름답긴 하지만 이 복잡한 21세기의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나는 자연인이다’ 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왓챠에서 <타샤 튜더> 를 고른 건 다큐멘터리 장르의 팬으로서 매년 체크하는 EIDF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의 올해 상영작 목록에 마침 이 영화가 들어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예쁜 정원의 꽃들과 웰시 코기들이 뛰노는 모습을 ASMR처럼 틀어놓으면 피곤한 눈과 마음이 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과꽃이 눈부신 정원의 안쪽 주방, 90대 여성이 주름진 손으로 천천히 반죽한 빵을 무쇠 스토브에 굽는다. 다큐에서는 상상한 것과 같은 전원의 그림이 펼쳐지지만, 튜더의 삶은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 삽은
16살 때부터 쓰던 거예요.
남자 애들에게도
절대 빌려주지 않았죠.


미국의 소박한 농가 출신일 것 같던 튜더는 20세기 초 보스턴 명문가 자제였고, 집안에서 기대하던 사교계 데뷔를 거부했다. 부모의 이혼 이후에는 친지 가족의 농장에서 사는 삶을 선택하며, 15살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를 키우며 산다.


고집스럽게 자기 시대의 방식을 고수한다기보다 자신의 동시대 보편적인 삶과도 불화했던 사람인 셈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매 순간을 충실하게 즐겼어요. 사람들은 다른 방식을 충고해주었죠. 그럼 ‘알겠어, 알겠어’ 답하고 다시 제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어요.”

튜더의 삶은 계속 자신이 원하는 삶과 일을 선택하고 실현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그의 커리어는 그리 동화적이지 않다. 그림은 여유로운 취미 생활이 아니라 생활력이 없었던 남편 그리고 아이 넷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생계 수단이었으며, 처음 포트폴리오를 갖고 뉴욕의 출판사들을 찾아다닐 때는 모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그려나간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집 역시 4계절이 뚜렷한 버몬트 주에서 뜰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수십년 전부터의 결심을 실현시킨 것이다. 원하는 구조는 튜더가 상세하게 그림으로 그리고, 큰아들 세스가 직접 지었다. 30여년 간의 인세 수입으로 모은 돈으로 사들인 30만평의 대지에. 그리고 거기에 30년 넘게 정원을 가꾼다.


정원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듯 인생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삶을 상상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하나씩 늘려가며 그 관계의 기억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온 사람이기에 튜더는 91세에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튜더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토대를 만들어 자신이 설계한 그림을 현실로 만들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고 있기에, 그저 주어진 천국이 아니라 쟁취해낸 낙원이다. 게다가 그가 구축한 세계의 한 점마다 스스로의 정직한 노동이 닿아있다는 점에서 완전하다(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며 세속을 떠났던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실은 2Km 떨어진 본가를 오가며 빨래며 음식을 해결했다고 하지 않던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튜더는 답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난 이미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았어.


나는 오직 자신을 위해 자기 삶을 완전 연소하는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황선우 / 작가


에디터, 작가, 운동애호가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고요,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니의 표정, 플로리다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