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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Sep 25. 2019

<조커>를 기다리며, <택시 드라이버>를 생각하다

택시 드라이버 (1976)



최근 영미권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는 누가 뭐래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다. DC 코믹스의 전설적인 악당을 재창조한 이 영화는 <행오버> 시리즈 등 코미디 영화로 주로 이름을 알린 토드 필립스 감독과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만남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더니, 급기야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하는 성취를 거두었다.


<조커>는 베니스에서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뒤 처음에는 해외 평론가들 사이에서, 지금은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후에 조커가 되는 인물이다)의 특성이 최근 영미권에서 수차례 흉악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 ’인셀’(비자발적 독신 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누군가와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관계를 맺을 의사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분노, 여성혐오, 자기연민 등이 ’인셀’의 주요 특징으로 거론된다)의 특징과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낡은 임대 주택에 살며 파트타임 어릿광대로 활동하는 남자라는 것,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며 이웃집 여자를 짝사랑하지만 번번이 좌절과 모욕만 경험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아서 플렉에 대한 정보다.


<조커>를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영화가 인셀이라 불리는 이들을 자극해 모방 범죄를 유발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에 일종의 면책 사유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한다.


미국 연예 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경우처럼 "인터넷 문화가 일부의 사람들에게 분노와 혐오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더 헌트>같은 영화도 상영을 취소하는 마당에,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커>같은 영화는 더욱 위험해보인다"며 <조커>에 평점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매체도 있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불거지는 대중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논쟁은 올 가을 <조커>라는 영화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영화 기자로서는 하루 빨리 영화를 보고 입장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조커>의 국내 언론시사가 9월 넷째주인 관계로 이 글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팬이라면 영화 <조커>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명백하게 스콜세지의 그림자를 느꼈을 거다. 특히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 니로가 토크쇼 진행자로 분한 모습을 보여주는 예고편의 한 장면은 누가 보아도 그의 1983년작 <코미디의 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스콜세지의 영화 중에서도 <조커>의 아서 플렉에 더욱 선명하게 영향을 준 작품은 그의 또다른 걸작 <택시 드라이버>가 아닐까 싶다. 관계 맺기에 서툰, 어느 고독한 택시 드라이버의 일상을 조명하는 이 작품은 자기만의 세계에 골몰하다가 뒤틀린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려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조커>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인물로, 자주 불면에 시달리고 극장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는 게 인생의 유일한 취미인 인물이다. 그는 매일밤 뒷골목을 오가며 다양한 손님들을 실어나른다. 그는 매춘부, 깡패, 마약중독자 등 거리의 사람들을 인간 말종이라 여기며 이들이 사라져야 도시가 정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트래비스가 정말 그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인간인지 영화를 보아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짝사랑하던 여자 베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간 뒤 관계가 단절되자 그 분노를 엉뚱한 방식으로 표출해 모히칸 머리에 총을 들고 여자가 돕는 대선 후보를 암살하러 가는 남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콜세지는 이 비뚤어진 남자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했던 그가 열두살 매춘부를 통제하던 포주 세명을 죽여 마침내 영웅으로 인정받는 대목까지 보여주며 관객을 더욱 깊은 심연 속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실패한 암살자가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도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삶의 아이러니야말로 <택시 드라이버>가 관객에 전하는 서늘한 메시지다. 영화는 도시의 영웅이 된 트래비스가 베시와 다시 만나 그를 백미러로 지켜보며 다시 갈길을 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 대목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묘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엉겁결에 참사는 면했지만, 도시로 다시 스며든 시한폭탄은 다시 작동을 시작할 것이며 언젠가는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 그 점을 알지 못한 채로 도시의 풍경은 다시 흘러간다.


나는 영화 역사상 <택시 드라이버>만큼이나 섬뜩한 엔딩신을 지닌 영화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비뚤어진 분노는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가. 사회는 개인의 좌절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택시 드라이버>가 남긴 질문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10월2일 개봉 예정인 <조커>에서는 이 질문이 어떻게 변주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택시 드라이버, 지금 보러 갈까요?


장영엽 / 씨네21 기자


존 파울즈와 에드거 앨런 포를 사랑했던 영문학도였으나, 2004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본 뒤 영화로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고, 공저로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인>을 썼어요. 스트리밍 플랫폼에 상주하는 미드·영드 덕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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