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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Nov 15. 2019

돌이킬 수 없는... <에이미>

에이미 (2015)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해 이런 것들을 기억한다. 굵게 치켜 그린 아이라인, 부풀려 올린 검은 머리카락, 어깨와 다리를 많이 드러낸 짧은 드레스, 깡마른 몸을 건들대던 무대 위의 몸짓, 파파라치 사진 속의 화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유일무이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니면 안 되었던 노래들.


한편 다큐멘터리 <에이미>를 보며 새로 알게된 점들이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16 살 때부터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 발매를 준비했다. 빌리 할리데이나 토니 베넷의 음악을 사랑했고 스스로를 재즈 가수로 여겼으며 ‘Love Is a Losing Game’ 이나 ‘Rehab’ 같은 곡을 혼자 작곡했다.


성공에 대해서는 “원하는 사람과 일하고, 가고 싶을 때 스튜디오에 가는 삶”으로 정의했으며, 유명해지는 상상만으로도 겁을 먹었다. 런던 북부의 하층민 유태인 가정에서 자라 거칠고 솔직한 말투를 사용했고, 그런 화법이나 태도를 인터뷰에서 지적받은 적도 있지만 고치지 않았다(여자 연예인의 말투나 옷차림을 문제 삼는 건 한국에서 더 촘촘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스스로에 대해 음악을 절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남자친구를 무척 좋아했지만, 건강하지 못한 관계 속에 있었다.  



2016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에이미의 데뷔 시절부터 다양한 공식/비공식 영상 아카이브를 수집해 보여준다. 친구나 동료와 보내는 일상, 공연 앞뒤의 모습들, 인터뷰와 화보 촬영 현장, 주변 인물들의 코멘터리 등은 여러 차례 덧대어지는 연필자국처럼 이 인물이 가졌던 존재감을 입체적으로 소묘한다.


이제 그 꿈들, 가치관, 음악적 재능과 매력은 에이미의 육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대로 2011년에 그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부고를 접한 여름밤에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에이미의 음악을 연이어 들었다.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에 대해서 그렇듯 에이미에게도 충격과 슬픔 뒤에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따라왔다. 그녀의 노래에 의지하며 보냈던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이 갚을 길 없는 빚이 되었다.



<에이미>를 관람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20대에 죽어버린 사람에 대한, 갑자기 중단된 기억을 되살린다는 행위가 가지는 슬픔과 허망함뿐만은 아니다. 이 뮤지션이 자기 재능에 대해 인정받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이 곧 그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미상, 전용기, 아레나 무대 같은 거대한 성공에는 그가 극도로 두려워하던 ‘유명해지기’ 라는 결과가 따라온다. 무대 위에선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지만 조명에 꺼진 후에 곁에 있는 건 쓰레기 같은 남자친구다. 자기파괴적인 관계에 빠져들고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약물에 중독된다.


스트레스- 약물과 술에 쩐 모습 – 파파라치들의 물고뜯기- 공연 스케쥴 펑크라는 악순환을 보며 누군가는 그의 불성실함과 약한 의지를 비난할 수도 있다. 연예인들이라면 치러야 하는 ‘유명세’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진창이 된 인생일지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에이미가 가까스로 섬에 들어가 재활 중일 때 그의 아버지는 딸을 방문하면서 타블로이드 취재진을 대동한다. 가족마저도 이 사람의 기본적인 인격을 지켜주기보다 돈벌이로 삼는 것이다. 스스로도 고통받는 와중에 연예 매체나 토크쇼의 조롱거리가 되고, 괴물 같은 여성으로 묘사되면서 에이미의 존엄은 무참하게 훼손된다.



경호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2011년 7월 와인하우스는 자신이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노래하는 재능을 돌려주고, 대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거리를 다시 걷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래.” 다음날 그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섭식 장애와 알콜이 결합된 심장 정지가 사인이었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진실을 통해 불편함의 감각을 일깨우는 데 있다. 잘 만들어진 자연 다큐를 볼 때 벌어지는 각성이 그 예다. 다들 얼마간 지구를 훼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우리 모두는 환경이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 목격할 때 현재의 물자 소비의 방식,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문제점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에이미>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소비자로서의 윤리 역시 그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영역임을 깨닫게 한다. 비대해진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스타를 착취하는 방식은 너무나 가혹하며, 부와 명예를 대가로 그들의 생명 자체가 너무 쉽게 소진된다.



K팝과 아이돌 산업이 이렇게 커지는 동안, 그 속에서 일하는 연예인들의 자유와 인간다움, 건강함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장치가 기능하는가 생각해보면 서늘해진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빚진 적 있는 모두가 나눠 져야 할 책임이다.  



에이미, 지금 보러 갈까요?


황선우 / 작가


에디터, 작가, 운동애호가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고요,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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