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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Nov 19. 2019

세상에 지지 말고 달려, <로제타>

로제타 (1999)



이 영화의 첫 장면, 하얀색 작업복과 비닐모를 착용한 로제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거침없이 복도를 걸어간다. 몇 개의 철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며, 급하고 절박한 걸음걸이.


그녀는 왜 자신이 해고를 당해야 하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이다. 넌 일을 잘했지만 수습기간이 끝났어. 그것 뿐이야.


이 순간, 우리는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 여자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이 세계는 여전히 평온하게 잘 돌아가리라는 걸, 아무도 이 소녀를 특별히 가엾게 여기지는 않으리라는 걸. 왜? 그게 바로 로제타에게 작동하는 세상의 섭리이고, 그들은(혹은 우리는) 로제타가 아니기 때문에.



로제타는 계속 어디론가 급하게 걸어가거나 혹은 숨이 차게 뛰어다닌다. 끼니를 때우려고 와플을 씹을 때나 물통에 담은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에도(아마도 그녀는 허기짐을 물로 견디려고 하는 것 같다) 그녀는 언제나 금방이라도 먹는 행위를 멈추고 금방이라도 달려가려고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이런 순간들이 있다. 로제타가 자신의 배를 부여잡는 장면들. 그녀는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은 후, 윗옷을 걷고 배 부분에다 헤어드라이기로 따뜻한 바람을 쏘인다. 그런 식으로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순간에조차 그녀가 싸우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제타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단 하나의 장면이 있다. 와플 가게에서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의 집에서 저 녁식사를 하는 장면. 그 남자는 갑자기 음악을 틀어주고 춤을 추자고 말한다. 이 순간이 바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때이다.


로제타는 처음에는 거부하고 그 다음에는 못 이기는 척 춤을 춘다.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분명히 처음에는 뻣뻣하게 굴었지만, 어느 순간 분명히 그녀가 춤을 추고 싶어했다고,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어했다고, 그녀의 얼굴에 보일듯말듯한 웃음이 지나갔다고.



나는 어쩌면 그 순간 안도했던 것 같다. 이 여자 아이가 제발 한 순간만이라도 먹고, 일하고, 달리고, 그러니까 삶에 대해 투쟁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춤 추는 여자아이로 머물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로제타는 견디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그런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도망친다(또 다시 달리는 것이다).


그날 밤, 그 아르바이트생의 집에서 머물면서 로제타는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네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친구도 생겼어, 난 친구도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산다, 난 평범한 삶을 산다. 넌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꺼야, 난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꺼야. 잘자, 잘자.”


로제타가 바라는 것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녀에게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녀는 다른 여자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와플 가게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 일자리를 다시 사장님의 아들에게 뻬앗긴다).


로제타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을 도와준 아르바이트생을 배신한다. 그녀가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결국 다른 사람이 구덩이에 빠져야 한다. 로제타가 구덩이에 빠지게 되더라도 그건 결코 로제타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잔인한 법칙일 뿐이다.


“난 낫고 싶지 않아!”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로제타의 술주정뱅이 엄마가 이렇게 소리 지를 때, 우리는 어쩌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차피 구덩이에 빠져야 한다면, 그게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삶이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내가 왜 그토록 달려야 하겠는가?


차라리 술을 마시기 위해, 술 한 잔을 얻기 위해, 술에 취한 채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은가? 로제타가 진통제와 헤어 드라이기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봤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고통은 또 다시 그녀를 찾아올텐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녀는 들고 가던 가스통을 땅에 떨어뜨리고 울음을 떠트린다(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 나는 그녀가 지쳤을지언정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약간은 안도한다.


이 세상의 법칙은 끔찍하고 우리를 자주 실망시킨다. 로제타는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가끔씩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으깨어질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란다. 로제타가 계속 달리기를. 왜냐하면 나도 그런 식으로 세상에 실망하고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으니까. 계속 달리면 어디로 가게 될까?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겐 그러한 믿음이 있다. 아무리 내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더라도, 그저 어떤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행위 그 자체가 내 삶의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의미가 될 수 있으리라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그러므로,


달려, 로제타.
이 세상에 지지 말고.






로제타, 지금 보러 갈까요?


손보미 / 소설가


2009년 <21세기 문학>,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 중편 <우연의 신>, 장편 <디어 랄프로렌>을 출간했죠. 망드를 즐겨보는 고독한 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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