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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Dec 16. 2019

지구라는 극장 -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2014)



그리스어로 포토는 ‘빛’, 그래프는 ‘쓰다’, ‘그리다’다. 빔 벤더스 감독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첫 줄에서 사진작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빛과 그림자로
세상을 그려나가고
써내는 사람


세계적인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카메라로 세상을 그려왔다. 브라질 세라 펠라다 광산 사진은 압도적이다. 5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개미처럼 흙 한 주머니를 이고 바벨탑을 오른다. 돈을,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을 좇아온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 사진 한 장에 압축된다.


“한번 금을 만진 사람은 절대 그곳을 못 떠납니다." – 세바스치앙 살가두


어느 날 갤러리에서 이 사진을 본 빔 벤더스 감독은 살가두라는 사람에 매혹됐다. 작품의 스펙터클을 떠나 사진작가의 시선이 따뜻했다. 다른 사진들도 보니 살가두는 인물들 한명 한명을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원제가 ‘The Salt of Earth’다. 


국내에서는 개봉 시기에 열리던 살가두의 사진전 명을 붙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으로 소개됐지만, 원제 그대로 번역한다면 ‘세상의 소금’, 내 마음대로 한다면 ‘지구의 소금’이다. 살가두는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진 매우 독특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장르를 뛰어넘었다. 앞선 브라질 광산 사진처럼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던 살가두는 1973년부터 2013년까지 에티오피아, 쿠웨이트, 사라예보 등 100개국이 넘는 곳을 돌아다니며 기아 빈곤, 전쟁의 참상, 인종 학살 등을 고발했다. 


그러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사진계를 떠났다가 환경 사진작가로 돌아온다.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평생 노동자, 이민자, 난민을 촬영해온 거장이 자연과 동물을 찍는다는 것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쌓아온 커리어를 망칠 수 있는 모험이었다.


난 상관없었어요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던 살가두는 그 결정 이후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콩고와 아마존 분지, 북극과 남극을 누빈다. 태초의 지구를 다룬 그의 새 사진 작업 <제네시스>, 천지창조는 그의 대표작이 된다.



그의 변신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는 직업을 바꿨다. 경제 전문가, 사진작가, 조림가.. 청년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던 살가두는 브라질 군사독재에 반대해 프랑스로 망명한 뒤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커피기구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하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업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 군상에 지쳐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릴 적 뛰놀던 목장과 인근 숲이 황폐화 돼 있었다. 아내와 함께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1998년 인스티투토 테라(Intstituto Terra)라는 환경 단체를 세워 본격적으로 조림했다.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지자 숲의 규모는 7㎢(약 214만 평)로 커졌고, 재규어 등 멸종위기종이 돌아왔다. 그는 사유지를 기부했다. 황무지가 국립공원이 되는 변화처럼 그의 삶도 기적이다.  



세바스치앙 살가두가 빛과 그림자로 세상을 그려낸 작품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구라는 극장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곳에선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돈을 좇는 성실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과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의 잔인함이, 그리고 아직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그 공간을 빼앗으려는 인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시선처럼 우리는 세상의 소금, 지구의 소금일까? 먹고 사는 것에 쫓겨 정신없을 때 한 번 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질문을 곱씹어볼 만하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지금 보러 갈까요?


최평순 /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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