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티, 완벽이란 이름의 허상

부끄러운 글쓰기에 대한 조언

by 시연



책, 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과 과제가 아니면 자발적으로 문자를 읽거나 쓴 적이 없었을 정도. 그러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한 문장이 있는데,


현재 우리의 기술력은 충분하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라는 뉘앙스의 문장.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글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서 알게 되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나도 달라지게 되더라. 이걸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당시, 음악을 전공하다 그만둔 뒤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나로서 ‘인문학’이라는 요소가 남들과의 차별화로 작용될 것이란 느낌을 받았나 보다. 이는 복무기간 중 독서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되었고, 읽다 보니 좋아지는 것이 책이더라. 글을 쓰게 된 것은 독서 후 시각적 결과물의 필요성을 느끼고부터 쓰기 시작하였는데, 쓰다 보니 좋아지는 것이 글이더라.




군생활 시절 썻던 글들. 오랜만에 꺼내어 보니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최근엔 독서 서평을 쓰기도 하지만, 인문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철학적 주제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다. 가령 "주체성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논리" 라던가 "자유의 역설"이라는 글. 산문도 좋아하는 터라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이 개인으로써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창조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굉장히 공감하는 말인데 나 또한 '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 과거 음악을 할 당시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아 예술을 통해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만들어냄과 동시에 살아있다는 감정(존재감)을 느끼게 한다는 말이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더라. 그래서 더욱 글을 자주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초창기 단순한 일기장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을 거란 생각조차 없었고, 그래서인지 그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손을 몇 번 더 놀리는 것 또한 없었다.(검색 알고리즘 그딴 거 개나 줘)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글이 쌓이기 시작하니 그 양은 생각보다 많아졌고, 한 명 두 명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렇게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 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마음. 자연스럽게 글의 퀄리티에 대해서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적인 장소'에 글이 올라가기엔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내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의 글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것이 “확신 없는 글을 어떻게 뻔뻔하게 내보이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는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삭제를 한 경우도 있다.) 현재 나의 지식으로 완벽한 글을 쓸 수 없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퀄리티로써 글을 마무리시켜야 할까. 과연 이곳에 글을 남겨도 되는 것인가. 나는 글을 더 쓰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아내야 했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스스로의 답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이곳에서 비단 나뿐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구한 답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부끄러운 글쓰기에 대한 조언



1. 그곳이 아니야

사람은 개인의 가치관, 개성이 없는 어린 시기에 타인을 모방함으로써 가치관의 틀을 조금씩 형성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와 타인의 행동을 비교하고 차이점을 찾게 되는데,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쉽사리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타인과의 비교로 언제나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정 한 분야에서의 승리가 모든 분야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으니 영원한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비교'라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좀 더 건전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비교. 나는 최근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타인과의 비교를 시작하려는 순간, 즉각적으로 비교의 대상을 '나'로 되돌린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보다, 나는 더 성장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의 성장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어제의 나, 오늘 아침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자그마한 위로와 힘을 준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절망에 빠져있기보다 최소한 무엇이라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2. 결국, 나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 인정하기 쉽지 않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컴플랙스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이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결함으로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 부분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문을 열지 않는다. 당신의 글도 결국 당신이고, 그러한 부족한 당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과 당신의 글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3.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전체주의, 사회주의를 통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역사를 보면,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배우면 배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인간이란 존재가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마저 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러한 특성(불완전함)이 우리를 더욱 인갑답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지만, 결코 완벽해질 수 없으며, 완벽해져서조차 안 되는 그런 존재. 그렇기에 그러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글은 결코 완벽해질 수 없지 않을까. 잡을 수 없는 꿈을 위해 헛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4. 데드라인

이 부분은 조금 실질적인 대안이라 생각하는데, 최근 나는 일주일이라는 마감 기간을 설정하고 글을 쓰고 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보장하면서도 필요 이상의 고민은 덜어낼 수 있다.



5. ‘글쓰기’가 아닌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나의 경우엔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입맛에 맞게 가지고 논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대변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논리와 작문에 대한 기술은 필요하다는 것. 실질적인 능력을 향상할 방안을 모색하고 행동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은 나보다 뛰어나신 분들이 이미 설명하고 계시니 노코멘트하겠다. 혹시나 좋은 자료를 알고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매우 도움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글이지 않은가)



6. 생각보다 남들은 당신의 글을 집중해서 읽지 않는다.

국내 점유율 70% 이상을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에서의 블로그는 단순한 글쓰기만으로 사람들을 집중시키기란 정말 어렵다. (브런치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솔직히 나조차 필요한 자료가 아니라면, 글의 논리나 구조, 문법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순히 글에서 영감을 받는가 받지 못하는가로 나뉠 뿐.


이건 글쓰기와 다른 얘기지만 타인의 시선과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서 말한다. 중학생 시절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집 앞 편의점을 나갈 때도 머리를 감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는 “너한테 아무도 관심 없으니까 얼른 가서 사와!”라고 매정한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았다. (요즘은 일주일째 수염을 안 깎아도 여기저기 잘 다니는데 정말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 사람은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무언가에 대해서 정말 세심하게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아무도 당신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니 아무런 개소리를 지껄여도 상관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스스로 만들어낸 타인으로부터의 잣대를 멀리 치워놓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명을 비롯하여 무언가를 창조하였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기쁨은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결코 가볍지 않듯이 다른 창작물 또한 우리가 그들을 창작한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인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글쓰기에 대한 나의 부끄러운 조언도 실질적인 부분보단 마음 가짐의 변화에 무게를 실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으로 거처를 옮기니 더 수준 있는(?)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리 가볍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것이 있기에 글을 쓰지 않는가. 포기하지 않고 분투하는 것이, 가볍지 않은 책임감을 짊어지는 것이 우리를 더욱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란 미래를 믿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결코 가볍지 않은 고민과 글이 당신의 미래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생이란 책의 작가를 응원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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