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로봇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로봇이 인간을 창조한다면. 로봇 엄마가 키운 인간 딸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블랙미러 시즌5에 실망했다면, 그보다 더 블랙미러스러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 영화로 달래보자.
인류멸종 하루 뒤. 살아있는 인간은 0명이지만 인간의 배아는 6만여개. 그 가운데 하나의 배아가 인공자궁에서 태어난다. 로봇 엄마는 우는 아이에게 딱 맞는 자장가를 찾아 불러주고, 따뜻한 손으로 안아주고(팔에 온열장치 완비), 분유를 먹이고, 걸음마를 가르쳐준다. 그렇게 아이는 어느덧 멋진 소녀로 성장하는데.
로봇 엄마는 아이가 아무리 울고 짜증내도 화내지 않고, 근력도 떨어지지 않는다. 생체 정보를 체크해주니 아이가 아픈지 열이 났는지, 감정이 어떤지도 잘 파악한다. 조물조물 소꿉놀이도 해주고, 홈스쿨링도 성장단계에 맞춰 잘 시킨다. 인간 엄마보다 나아 보이기도...
소녀는 로봇을 <마더>라 하고, 로봇은 소녀를 <딸>이라 부른다. 여기서 유념할 부분은 맘이 아니라 마더라는 점이다.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랄까. 로봇은 아이를 잘 키우긴 하지만 다소 냉랭하고 엄격한 어머니다.
내일은 시험 보는 날. 매년 돌아오는 테스트인데, 로봇 어머니는 점수 잘 받으라고 압박한다.그 테스트는 딸에 대한 테스트라기 보다는 자신에 대한 테스트라면서. 이 대목에선 보통의 엄마들 생각난다. 자식의 점수가 엄마 점수를 결정한다는 듯한 태도...
어느날, 이들의 집으로 인간 여자가 들어온다. 로봇 엄마는 인간이 멸종됐다고 말했는데, 그 여자는 드로이드들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딸은 우리 엄마 그런 로봇 아니라고 하지만 인간 여자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로봇 어머니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딸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헷갈려 하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로봇 어머니는 딸을 더 나은 인간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다른 인간들과 내 딸은 다르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확인하고 테스트한다.
인간 사이에서의 등급을 가르고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로봇의 사고방식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욕망과 일맥상통하는 지점도 있다.
그런데 내 딸 하나 잘 키우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구를 망친 인류보다 더 나은 인류를 재건하겠다는 히틀러식의 우생학적 세계관으로 확장된다는 게 소름끼치는 포인트.
반면, 인간 여자는 드로이드는 인간을 돌보는 용도로 설계가 되었든, 살상용으로 설계가 되었든 모두 (나쁜 방향으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엄마만은 좋은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딸의 기대는 이루어질까, 배반당할까. 인간을 등급으로 나누어 좋은 인간만 남기겠다는 사고방식은 소름끼치는데, 그런 생각이 로봇에 적용되는 데엔 윤리적 문제가 없을까.
원제는 <I am mother>인데 <나의 마더>로 번역했다. 적절한 번역 같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가 mother와 murder(살인자)의 이중적인 뜻을 담았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어서다.
긴장감을 높여가는 스토리 전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신선한 결말로 깔끔하게 볼만한 영화다.
제목 나의 마더(I am mother)
감독 그랜트 스푸토어
각본 마이클 로이드 그린
출연 클라라 루가드, 로즈 번, 힐러리 스웽크
등급 15세
평점 IMDb 6.9 로튼토마토 90% 에디터 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