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칭 Jun 24. 2019

아무나 물어뜯는 까칠남의 매력, 애프터 라이프

단조롭고 잔잔한 이야기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그속에 유쾌함과 적당한 감동까지 녹여낸다면 금상첨화. 그런 이야기를 찾는 당신이 봐야 할 시리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줄거리


지각은 자기가 해놓고 ‘You are late(늦었네요)’하며 알은체하는 여직원에게 ‘You are bored(넌 따분해)’라고 라임을 맞추며 까칠하게 구는 이 남자. 영국의 작은 마을 신문사 기자인 토니는 주변 사람 모두에게 시비를 건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벽에 생긴 얼룩을 유명인의 얼굴이 나타난 기적이라고 우기는 사람, 콧구멍으로 동시에 리코더 2대를 연주하는 남자, 히틀러 닮은꼴 아기를 키운다는 부부 따위를 취재하는 일이 고작인 그에게 세상은 온통 욕하고 으르렁댈 일 투성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토니도 점차 다시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는데… 


아래부터 스포일러 주의! 


싱겁지만 충분하다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를 이용하다 내 시청목록을 돌아볼 때면 정서가 피폐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가 온통 범죄(주로 마약)나 정치(그것도 주로 음모와 암살이나 테러)에 편중돼 있다는 걸 확인할 때다. ‘내 문제인가?’ 싶어 전체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유독 그런 장르의 드라마가 많은 탓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합리화한다). 

토니의 일상은 무료하고 만나는 사람도 비슷하다. [넷플릭스]

애프터 라이프(원제)는 좀 다른 방식의 드라마다. 허름한 영국의 어느 시골 동네가 드라마의 무대이고, 토니의 직장인 탬버리 가제트 신문사, 토니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 매일 토니가 걷는 출근길 정도가 등장하는 배경의 전부다. 만나는 사람도, 새로운 사건도 별게 없다. 따분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췄지만 의외로 드라마는 재밌다. 토니의 드립과 기행은 생각 없이 웃게 하고, 마지막엔 비겁하게도(?) 살짝 찡하게 만든다. 30분짜리 에피소드 6편으로 구성된 짧은 드라마에서 이 정도 줬으면, ‘줄건 다 줬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저베이스의 개인기 


찰진 욕과 방귀 뀌고 성내는 뻔뻔함, 논리적이고 얄밉게 사람을 후벼 파는 인신공격까지. 이 드라마의 매력은 토니라는 캐릭터다. 바꿔 말해 토니 역할은 물론 제작까지 맡은 리키 저베이스의 개인기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천박한 토니의 중지손가락. 그는 아무나 물어뜯는다. [넷플릭스]

저베이스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영국 드라마 ‘오피스(2001)’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다. 이때도 감독ㆍ각본ㆍ주연까지 혼자 다 했다. 그의 주특기는 냉소적이면서 철학적인 블랙코미디인데 애프터 라이프에서도 이런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결국, 새로운 사랑으로


단조로운 일상 속 토니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로 미묘한 변화를 겪는다. 마약쟁이 줄리언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상처가 있다는 걸 알게되고, 아내의 묘지에서 매일 만나는 앤으로부터 다시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깨우친다. 

아내의 묘지에서 만나는 앤을 통해 토니는 다시 행복을 꿈꾼다. [사진 넷플릭스]

결국 토니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요양원 간호사 엠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존재감 없던 샌디의 한방


캐릭터들은 저마다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굳이 콕 집어서 약한 캐릭터를 고르라면,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신문사 막내 기자 샌디다. 시골 신문기자로 들어온 샌디에게 사장은 ‘잘되어서 가디언 간 기자도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지만 토니는 ‘가디언 간 기자가 지금은 망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준다. 이 장면 이후 샌디는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그러나 막판 묵직한 한방을 선사한다. 신문사에 단골로 찾아와 자기 이야기를 기사로 써달라는 악성 민원인 브라이언을 만나면서다. 브라이언은 아내와 7년 전 사별한 후 바퀴벌레와 쓰레기 더미 속에 사는 모습을 1면에 내달라고 한다. 토니는 포기하지만, 샌디는 브라이언의 상처와 내면을 생생히 기사로 적어낸다. 이 기사를 살펴본 토니의 눈이 반짝거린다. 골칫덩이도 사연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후배한테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와칭 방문해서 더 많은 리뷰보기 


TMI

저베이스 특유의 블랙코미디는그의 무신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넷플릭스는 <애프터 라이프>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으며,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가 싫은 당신에게 추천하는 일드, 중쇄를 찍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