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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Jun 02. 2022

시계의 이면과 내면_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스토리즈

무브먼트로 채운 벽, 관객에게 맡겨진 페를라주 드릴 프레스

그동안 예거 르쿨트르가 만들어 온 리베르소 일부. 마지막 피스엔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에나멜로 그려졌다. 사진=oldschoolwatch

시작은 다소 현실적이었다.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는 폴로 경기 중 시계가 깨지지 않도록 다이얼을 뒤집을 수 있도록 설계돼 스포츠 워치로 등장했다. 하지만 시간을 나타내는 기계에 '숨겨진 면'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비밀스럽고 로맨틱했다. 리베르소의 평평한 철판엔 수많은 장식이 그려졌고, 또 다른 공간의 시간을 나타내는 다이얼까지 자리를 잡았다.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의 탄생 91주년을 맞아 시작과 현재, 앞과 뒤, 그리고 겉과 안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었다. 'The Reverso Stories'라는 이름으로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다양한 리베르소 모델과 무브먼트를 한데 모으고, 페를라주 체험 공간까지 마련했다. 기계 쪽에 유독 관심이 많은 시계 팬들께 꼭 추천하고 싶다.


Caliber Wall

리베르소의 무브먼트들을 모아놓은 칼리버 월. 사진=oldschoolwatch

1931년 출시된 리베르소는 지금까지 50개가 넘는 무브먼트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케이스 자체도 독특한 데다, 한 무브먼트로 양면의 핸즈를 움직여야 하는 듀오페이스의 특성상 별도 무브먼트 제작은 필수다. 메가 컴플리케이션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히는 리베르소 히브리스 메카니카같은 모델은 4개 다이얼을 움직일 정도니 설명이 더 필요할까.


아무래도 스켈레톤 모델이 아니면 리베르소의 무브먼트들을 온전히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더 리베르소 스토리즈에선 이들을 한데 모았다.

순서대로 정렬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진=oldschoolwatch


전시장의 한켠에 그칠지 모르지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멈춰서 한참을 쳐다볼 정도로 아름다운 무브먼트들이 모여있었다. 특히 1933년에 만들어진 칼리버는 너무 작아서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걸 만들었나 싶을 정도. 돌아다니다 보면 동 연대에 만들어진 시계들을 전시장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1933년엔 코르도네 스트랩으로 손목에 고정할 수 있게 만든 '리베르소 코르도네'와 폴로 경기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여성용으로 만든 리베르소 레이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 피스 모두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특히 2006년에 만들어진 칼리버 175는 황도십이궁도가 특히 눈길을 끄는데, 세 면의 다이얼에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나눠 담은 리베르소 트립티크에 쓰이는 무브먼트다. 별의 운행 주기, 일출과 일몰, 퍼페추얼 캘린더 등의 기능을 갖췄다.

칼리버 175와 리베르소 트립티크. 사진=oldschoolwatch



Perlage


볼거리가 충분히 많은 전시지만, 특히 인상깊었던 건 페를라주 드릴 프레스. 스위스에서 직접 페를라주 기계를 가져와서 체험해볼 수 있었다. 페를라주는 무브먼트의 브릿지나 플레이트 등에 동그란 패턴을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찍어 다양한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마감 처리를 말한다. 미적인 기능도 크지만, 과거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철가루 등이 기계 부품을 고장낼 수 있어 마감 차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진=oldschoolwatch


왼쪽 사진 우측 하단에 회색 레버를 누르면 바로 위에 있는 작업대에 드릴이 내려오면서 패턴을 만든다. 오른쪽은 대충 찍어본 결과물인데, 자세히 보면 원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너무 약하게 누르면 패턴이 아니라 기스만 나고, 반대로 너무 세게 누르면 원이 커지거나 나아가 드릴이 박힌다고.


전시에는 듀오페이스 무브먼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곳도 있다. 워치메이커가 직접 무브먼트를 분해하면서 보여주는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날 워치메이커가 퇴근하는 바람에 직접 보진 못했다.


 

커스텀을 위한 도구들과 도료. 사진=oldschoolwatch

커스텀한 시계 등등 여러 모델을 볼 수 있는데 어차피 이런 리뷰는 다른 훌륭한 분들이 올려주실 거라 생각하고 패스하겠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만 소개하자면 1931년, 즉 리베르소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만들어진 리베르소 레드. 예거 르쿨트르 측은 화이트나 실버 다이얼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고정관념에 도전하면서(당시엔 LeColutre & Cie) 만들었다고 설명하는데, 굳이 이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이 시대에 이렇게 세련되게 디자인했을까 싶다.


리베르소 레드. 사진=oldschoolwatch



+ Earth, Wind and Fire의 'Side by side'를 들으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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