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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Mar 14. 2023

제랄드 젠타가 만들지 않은 오데마피게의 사각형 로알오크

쿼츠에 반대했던 경영진과 디자이너 재클린 디미어

오데마피게(Audemars Pigeut)의 로얄오크(Royal Oak)를 이야기할 때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erald Genta)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로얄오크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현재 유행하는 스포츠 스틸 워치 워치의 아버지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Ref.6005 (사진=Audemars Pigeut 제공)


하지만 이번 로얄오크를 이야기할 땐 젠타의 이야기를 빼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아주 흥미로운 시계를 봤습니다. 로얄오크의 브래슬릿이 더해진 사각형 시계였습니다.  와플 모양 다이얼과 AP 로고를 보면서 이건 분명히 로얄오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보면서 더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제럴드 젠타가 만들지 않은 사각형 쿼츠 시계였기 때문입니다.


제 페이지가 할 줄 아는 게 찾아보기 귀찮은 걸 대신 팩트체크 해주는 거 빼고 뭐가 있겠습니까. 레퍼런스 넘버가 6005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오데마피게가 운영하는 자사 아카이빙 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오데마피게도 이 시계의 범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이런 제목을 붙여놨습니다.


"1978년 : 이름을 대면 안되는 가까운 친척"


먼저 ref. 6005는 1978년에 만들어진 로얄오크의 쿼츠 버전으로 만들어진 게 맞습니다. 다만 오데마피게조차도 로얄오크가 맞다고 하기엔 조금 조심스럽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시계를 만든 디자이너에 따르면, 이 시계는 전부터 오데마피게 내부에서 나왔던 '로얄오크에 쿼츠 무브먼트를 도입하자'는 목소리에 힘입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영진의 반대에 부딪혔죠. 결국 다른 라인처럼 디자인하되, 로얄오크만의 특징적인 디자인을 담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오데마피게를이끌었던 자크 루이 오데마(Jacques-Louis Audemars·Chairman)와 조지 골레이(Georges Golay·Managing Director)는 쿼츠 시계로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이 줄줄이 무너졌던 쿼츠파동 때에도 오데마피게에 몸담았던 이들인 만큼, 로얄오크 쿼츠 버전의 탄생을 가능한 늦추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반대를 우회하는 전략을 세운 디자이너가 바로 재클린 디미어(Jacqueline Dimier) 입니다. 1975년 오데마피게에 합류해 1976년 첫 여성용 로얄오크(ref. 8638)를 만든 장본입니다. 오데마피게 뿐만 아니라 롤렉스(Rolex)와 제럴드 젠타의 동명 브랜드에서도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죠.


디미어는 훗날 "로얄오크 라인에 쿼츠를 도입하려는 유혹이 컸지만 경영진은 이에 반대했고, 대신 끝을 비스듬하게 마감한(Bevelled) 직사각형 라인인 ref. 6005를 만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브래슬릿과 마감을 적용했지만, 차별성을 위해 나사로 베젤을 뚫지 않고 4개 스터드로 고정했다"고 합니다.


무브먼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칼리버2511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실 오데마피게는 ref 6005가 탄생하기 6년 전인 1972년부터 이 무브먼트를 제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보다 전 버전인 2510보다 크기가 작아졌다고 하는군요. 다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쿼츠 무브먼트가 신기술처럼 인식됐던 것과 달리, ref 6005가 나올 즈음엔 쿼츠가 더 이상 첨단 기술이나 시계의 미래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피셜이 아닌, 오데마피게 피셜입니다.


다만 쿼츠 무브먼트일지라도, 당시 오데마피게의 최고 워치 메이커들이 직접 마감을 했다고 합니다. 쿼츠를 만들더라도 오데마피게의 기술력과 심미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었던 셈이죠.


그래도 이 시계를 로얄오크라고 인정하긴 조심스러웠나 봅니다. 이 시계가 로얄오크가 맞냐는 질문에 대한 오데마피게 측은 이런 답을 내놨습니다.


"1978년부터 1979년까지 작성된 카탈로그에서 6005 모델은 로얄오크라고 불리지 않고 단순히 쿼츠라고 불린다." 


"이 시계들은 AP 쿼츠라인으로 불렸고, 약 1985년까지는 계속 유지됐다. 재클린 디미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로얄오크 시계가 아니라 가까운 친척이었다."


- 프린스의 Musicology를 들으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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