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 히슬롭의 롤렉스 튜더 JLC 노모스 글라슈테 그랜드세이코 등
위스키 브랜드 발렌타인의 마스터 블렌더 샌디 히슬롭(Sandy Hislop)이 지난달 방한했습니다. 이 분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시계 애호가분들께는 롤렉스(Rolex)에서 마스터 워치메이커가 온 셈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루이비통에서 퍼렐을 보낸 격이라고 하면 될 걸 그랬네요.
오늘은 히슬롭의 시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가장 좋은 위스키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마셔도 좋은 맛을 내는 위스키"라는 그의 짧은 말에선 편견없는 시도와 존중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대상을 일상에 스미게 해 라이프스타일로 대하려는 태도의 중요성까지 느껴졌는데요.
보다보면 히슬롭의 시계생활 역시 비슷했습니다. 1년 중 4주 정도만 출장을 다닌다는 그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블렌딩 룸에 출근해 올린 사진부터 보시죠. G-Shock의 프리미엄 라인 중 하나인 MTG의 B2000XMG1입니다. 흔히 레인보우 마운틴이라고도 불리는 한정판 모델이죠.
미리 이야기하면 히슬롭은 이 외에도 다양한 지샥과 세이코(Seiko),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 시티즌(Citizen) 등 일본시계를 보여주는데요. 놀라운 건 융한스(Junghans)와 노모스(Nomos), 글랴슈테 오리지날(Glashütte Original)을 비롯한 독일시계와 롤렉스(Rolex), 튜더(Tudor), 오메가(Omega),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 등 스위스 시계까지 말도 안되는 라인업들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아 미국에서 탄생한 해밀턴(Hamilton)과 영국의 크리스토퍼 와드(Christopher Ward)도 있군요.
이야기 나온 김에 일본 시계부터 볼까요. 먼저 브라이틀링 슈퍼오션 헤리티지와 그랜드세이코 엘레강스 컬렉션의 SBGK 시리즈. 그리고 스프링드라이브 20주년으로 만든 크로노그래프 SBGC231.
노모스 클럽 캠퍼스와 융한스 막스 빌 크로노스코프. 막스 빌은 바우하우스 감성의 정수라 불리는 막스 빌이 만든 바로 그 라인입니다. 그리고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Spezimatic의 월드타이머 모델로 빈티지 시계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워낙에 유명하니 한번에 넘기죠. 롤렉스 익스플로러2, 튜더 블랙베이와 펠라고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오메가 씨마스터 007 시리즈, 해밀턴 카키 오토매틱, 크리스토퍼 와드 C1 벨 칸토입니다.
1983년 스코틀랜드 던디의 양조장에서 위스키 관리를 시작한 히슬롭은 위스키 업계에 몸담은 지 40년이 된 것을 기념해 자신의 멘토이자 3대 발렌타인 마스터블렌더인 잭 가우디(Jack Goudy)가 만든 원액으로 새 위스키인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 컬렉션; 더 리멤버링' 선보였습니다.
앞으로 잭 가우디에게 배운 기술 다섯가지를 적용한 위스키를 매년 1개씩 5년동안 선보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위스키는 발렌타인의 200년 역사를 기념하는 제품이 될 예정이고요.
마음같아선 '시간의 미학'이라고도 불리는 위스키를 만드는 그가 시계를 좋아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며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우연을 비롯한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적당히 그럴싸한 수식어로 끝내기에 위스키와 시계를 향한 그의 애정은 너무 커보였거든요.
대신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히슬롭은 함께 일하는 블렌더들에게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 자신만의 단어로 맛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항상 강조한다고 합니다. 자신만의 표현으로 쌓은 기록들이 훗날 큰 힘이 될 거라면서요. 실제로 그는 한국에서도 기자들에게 자신이 사용한 덤바턴 증류소의 원액이 풍선껌같은 아주 달콤한 향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그의 태도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시계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오늘 다 소개하진 못했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엔 생전 처음보는 브랜드들이 넘쳐나고, 가격대 역시 저가부터 고가까지 천차만별입니다. 그가 단순히 시계를 '오랫동안' 좋아했다면 이런 컬렉션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 긴 시간동안 순수하면서도 솔직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관심가져 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히슬롭에게 받은 깊은 감명은 단순히 긴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내는 태도와 애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하세요. 발렌타인을 마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본인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마시는 것입니다.
- 샌디 히슬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