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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May 24. 2023

'마지막 황제'의 파텍필립 시계가 갈색 투톤인 이유

수용소에서 무료했던 황제가 내린 주문

처음 필립스에서 푸이의 파텍필립(Patek Philippe) 칼라트라바가 경매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봤을 땐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다이얼을 한참 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나 모습이 바뀌는 파티나가 그의 스토리와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파텍필립 칼라트라바. (사진=필립스 제공)


특히 파란 문페이즈와 정확히 반으로 나뉜 갈색·흰색 다이얼, 프랑스어로 쓰인 달력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매사 필립스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고 할 정도니까요.


3시와 9시를 기준으로 두 색을 띠는 이 시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필립스는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했던 한 작가를 만났다고 합니다. 푸이의 자서전에 '빅 리(Big Li)'라는 이름으로 여러번 등장했던 푸이의 전 신하 '리궈슝'이 1982년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한 건데요.

(왼쪽)푸이의 신하였던 리궈슝. (사진=필립스 제)

33년 동안 푸이를 모셨던 리궈슝은 기계에 능통해 마지막 황제의 시계와 안경을 종종 고쳤다고 합니다. 소련 수용소에서 불안하면서도 무료한 시간을 보냈던 푸이는 리궈슝에게 이번 경매에 올라온 칼라트라바의 시계 내부를 연구해달라고 부탁했고, 어느 날엔 케이스처럼 다이얼도 백금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져 다이얼 표면을 제거한 뒤 조사해달라고 합니다.


리궈슝은 다이얼의 도료(에나멜)를 꼼꼼히 제거했고, 다이얼이 황동인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이 시계의 다이얼은 원래 모두 흰색이었던 거죠.


필립스 역시 "이 시계는 황제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귀중한 시계를 조사하기 위해 그의 가장 가까운 하인에게 맡긴 신뢰에 대한 영구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간결한 크라운. (사진=필립스 제공)

사실 다이얼 말고도 이 시계는 재밌는 구석이 정말 많습니다. 먼저, 요즘 파텍필립 시계와 달리 크라운에 아무런 무늬도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필립스에선 바우하우스의 절제와 기능성을 표현했다고 하네요. 배젤도 깎아낸 듯 곡선 없이 평평하고요.


그리스 남성 얼굴 모양의 '마스크 홀마크'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1912년부터 '950 표준'을 넘긴 수입 플래티넘 품목을 나타내는 마크라고 합니다. 1926년까지는 윤곽선만으로 마스크 홀마크를 그렸고, 그 이후부터는 직사각형 프레임 안에 마스크 홀마크를 새겼습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러그에 새겨진 마스크 홀마크, 무브먼트,  백케이스 내부, 푸이의 칼라트라바 모델 광고, 마스크 홀마크. (사진=필립스 제공)

이 외에도 당시 유일한 프랑스 파텍 필립 수입업체 '길러민(Guillermin)'에서 판매했다는 것을 인증하는 JG & Cie(Jean Guillermin) 홀마크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푸이의 파텍필립 칼라트라바는 스트랩과 버클 등을 모두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파티나 역시 그대로죠. 


필립스는 "박물관에 소장할 가치가 있는 시계를 얻을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라며 "파텍 필립 역사의 중요한 부분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사의 일부분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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