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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Mar 04. 2022

인레이, 밴드와 시계에 생명을 씌우다

(feat. IWC, 로저드뷔)

F1 우승 차량 타이어에 고무를 덧씌워 만든 밴드를 사용했다. 사진=로저드뷔 제공

시계 관련 텍스트를 보다 보면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단어가 많아 의미를 지레짐작할 때가 많다. 오늘 본 '인레이(Inlay)'도 그랬다. 글 전체를 읽다 보면 맥락상 짐작할 법도 한데, 가끔 단어만 두고 보면 다이얼에 반사된 빛이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빛이 뻗어나가도록 가공한 '선레이(Sunray)'의 일종인 것처럼 헷갈린다.


인레이는 치과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다.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금이나 레진처럼 손상된 치아를 채우는 보철물을 말한다. 어금니를 떼운 금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인레이 러버 밴드도 직물이나 가죽 등 다른 소재로 만든 밴드의 안쪽에 고무를 씌운 것을 말한다.


러버밴드 제조사 Rubber B에 따르면 러버는 1950년대부터 시계 밴드로 사용돼 1960년대 이후 다이버워치 등에 쓰이며 시계 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로 자리잡았다. 밴드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최근엔 인레이를 통해 툴워치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직물을 비롯한 타 소재의 내구성을 높이고, 기존 러버밴드와 비교했을 때 디자인 다양성이 넓어지기 때문.


최근 잡지에서 본 IWC의 빅 파일럿 워치 탑건 '모하비 데저트' 에디션에 사용된 밴드 역시 직물로 만든 밴드의 손목쪽 면에 고무를 씌운 인레이 방식으로 만들었다(텍스쳐 인레이 러버밴드).

빅 파일럿 워치 탑건 '모하비 데저트'. 사진=IWC

모래색 세라믹 케이스와 흑색 다이얼로 만든 4000만원대 한정판* 시계엔 어떤 밴드를 달아야 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인레이의 진가가 드러난다. 기존 빅파일럿 워치라면 가죽밴드로 충분했겠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파일럿을 떠오르게 하는 이 거친 시계엔 너무 고전적이었을 것 같다.

*2021년 12월판 잡지엔 매년 150개만 생산한다고 써있는데 오늘 사이트에 가보니 250개라고 써있다. 오타인지 수치가 바뀐건지 확인이 필요하다.


직물밴드를 달자니 가격에 비해 아쉽다. 러버밴드는 다이버로 활약하는 해군 동기의 밴드를 빌려온 것 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스토리가 재밌어질 지는 몰라도, 일단 한눈에 봤을 때 늦잠을 자다 전투복에 슬리퍼를 신고 헐레벌떡 뛰어나온 군인같은 모양새일 거다. 브래슬릿은 무거운 데다 손목에 착 감기지 않아 기능성을 한수 접어주는 느낌이다. 툴워치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밴드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IWC는 현대 파일럿 워치에 자주 쓰이는 직물밴드에 고무 인레이로 내구성을 높여 '고급 툴워치' 이미지를 내세우는 전략으로 난관을 헤친 것으로 보인다. 러버 인레이로 기능과 디자인을 더해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러버 인레이 밴드의 또 다른 예로 로저드뷔의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를 들 수 있다. 로저드뷔는 세계적인 레이싱 경기 F1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는 브랜드 피렐리와 협업해 밴드를 만들었다. F1 우승 차량의 타이어에 항 알레르기 고무를 인레이하는 방식으로 밴드를 제작한 것. 타이어를 그대로 사용해 컨셉과 디자인을 살린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인레이가 없었다면 애초에 실용성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아시스의 'Acquiesce'를 들으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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