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어렵다
나는 밉보이기 싫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위험 요소를 남겨두는 거 같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호감 가는 사람에게는 한층 더 친절해진다. 그 사람 영역 안에 비좁고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런 생각과 별개로 나는 사적으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집에서 연락 한번 안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무리에서 챙겨주길 바라고 있다. 그들과 함께 떠들거나 단체로 놀러 가고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를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무리에 속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중에 더 좋은 인연이 나타날 수도 있기에 계속 여지를 남겨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 깊은 속엔 성장이 안 보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박혀있는 걸 수도 있다. (정작 자신은 자기 계발의 실패자이면서 말이다) 신앙인으로서 질 나쁠 조짐이 보이는 사람들은 다 걸러내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는 사람들에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마저 성장 가치가 충분하고 나와 잘 맞는지를 파악해야 하므로 진짜 친구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 내가 사적으로 연락을 안 하는 습관 덕분에 겨우 남은 몇 명도 잃어버릴 판이다. 돌연변이 INFJ는 교우관계는 물론 자신의 속마음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복잡한 존재인 거다.
그래서 단순하게 보여 주기 식으로 나를 친절함으로 포장한다. 무해한 사람이라고 인식해 주기 바라며 적당히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두고 친목을 다지는 거 같다. 그러면서 나를 남의 사적 영역에 들여보내 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남의 마음 깊은 속 약점, 결핍을 채워주어 나의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게 내 본 목적인 거 같다. 그렇다고 절대 악용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선은 반드시 지킨다. 타인에게 도움을 준 후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이익을 따로 챙기는 거다. 예시로 타인의 원하는 일 귀찮은 일을 도맡아주며 그 사람의 관심사를 슬쩍 물어보는 거다. 정보를 기억해서 나중에 관련 물품을 선물해 주거나 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은 좋아한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는 공식을 이용해 이후 내게 더 많은 도움(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얻게 한다.
경험상 속마음, 사적 얘기나 고민을 털어놨을 때 부쩍 친해지는 거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고민 털어놓기엔 부담스러워할 테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음을 열기 위해 나의 정보를 미리 털어놓는 거다. (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 관심사,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보를 속사정 꺼내듯이 이야기하면 된다.)그럼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여기엔 조건이 있다. 1. 적당한 외모 관리 2. 편안한 말투와 듣기 좋은 목소리 톤 3. 적당한 간격의 반응 또는 공감 반응(눈치) 4. 문맥을 해석하는 능력과 관련 내용을 꺼낼 수 있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즉 사람의 대화는 복잡하고 치밀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다. 그걸 직감적으로 학습하고 있으니 다들 잘 모르는 거 같다. 화술 서적을 읽기보단 방대한 경험과 대화로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나보다 잘생기고 예쁘면 나는 말려들고 기어가는 행동 양상이 보인다. 화술엔 자신감과 여유로운 모습이 중요한데 그들 앞에선 균형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결핍을 찾을 수 있다. 상대방과 나의 모습이 비교될 때 과연 나는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눌만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본다. 예쁜 그녀의 모습과 못생긴 내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녀 옆에 걸맞지 않은 추악한 외모( 여드름 흉터투성인 얼굴)는 어울리기에 마땅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사람들을 골라 친목했다. 시간이 지나 이젠 예쁜 사람들 앞에 서면 눈앞이 하얘져서 마주치기 힘들어졌다. 결국 자존감 문제였다. 스스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고선 정상적인 대화를 이루지 못한다.
불편한 상황을 계속 회피하면 항상 더 어려운 상황으로 돌아오는 거 같다.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오게 된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나의 자존감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나의 숙제는 어떤 상황에서든 떨어지지 않는 자존감을 만드는 거다. 가장 유명한 방법은 나와의 신뢰를 쌓아가는 거다. 내 약속을 누구보다 소중히 하고 지켜야 할 것이며 무조건 성취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거다. 목표 횟수를 10개 내외 혹은 시간은 30분 내외로 무조건 달성이 가능하도록 설계하며 시간을 따로 마련해 한가지에 집중하는 행위를 반복하여 습관을 만들자.
의욕만 앞세워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의 상상력은 지구 저편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기댓값을 높게 설정하면 실패 시 감수해야 할 실망감도 비례적으로 커진다. 이 정도는 달성할 수 있겠냐는 생각,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위험하다. 이 세상은 절대 당연한 건 없음을, 사람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게을리고, 타협하기 좋아하고, 자만하고, 능숙하게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흡사 악마의 면모가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뒷배 없어도 허영심으로 교만 하는 게 인간이다. 한편, 인간은 절대 꺾이지 않는 신념, 순수한 사랑, 초인적인 정신력, 아픔과 힘듦을 함께 짊어져 줄 수 있는 나눔, 가족의 책임, 이타적인 천사의 면모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인격은 두 면모의 비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찾는 여정이 길고도 멀다고 하는 거다. 내가 얼마나 의지박약, 작심삼일인지 파악하고 내 전용 맞춤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 그렇다고 내 힘에 의존하지 말고, 되도록 공동체의 힘을 빌려야 한다. 운동하는 분위기에서 덩달아 나도 열심히 하고, 공부하는 분위기에선 힘듦을 공유하는 거같이 모임과 함께하는 게 무조건 더 수월하다.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 작대기의 힘은 질기듯 모이면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정상적이고 배움의 가치가 있는 모임에 속하면 변화할 수 있다. 시기 질투보다 모두가 잘되길 바라며 서로서로 이끌어주며 각자 목표로 달려갈 수 있게 도와주는 모임이 필요하다. 같은 힘듦을 경험하고 있음을 느끼고 넘어졌더라도 위로하고 용기를 부어주고 부축해 주는 인간애가 충만한 아름다운 모임이 필요하다. 분명 사람됨을 회복하고 치유가 이루어지는 모임일 것이다.
예쁘고 잘생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하는 생각은 어리석은거다. 한 명의 인생과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아야한다. 표면적인 외모로 사람됨됨이를 판단해선 안된다. 물론 호감도와 사회 결속 형성에 유리하겠지만 외모를 기준으로 위치 등급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되었다. 멋대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고쳐야한다. 외모 보여지는 거에 속으면 안되는 거다. 하물며 인간은 속임의 달인이며 진실을 호소하면서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다.
일단 가장 위축되는 외모부터 고쳐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여드름 관리했더라면 그나마 봐줄 외모가 됐을 거다. 더 늦기 전에 피부관리부터 하자. 과거의 망령을 붙잡기보단 현실 개선에 더 집중하자. 외모 관리는 꾸준한 시간을 들여야 효과가 나오는 거 같다. 오래 걸리니 꾸준한 인내심과 관심을 두고 하나의 루틴처럼 만들자. 수면과 화장품 관리, 선크림을 생명처럼 여기자. 운동은 매일 숙제처럼 여기자. 집 귀가 전 반드시 헬스장을 들리는 습관을 만들자. 근력과 유산소 조합은 지방 연소와 근육 키우기에 최적인 조합이다. 무조건 헬스장을 들린다는 마음으로 나약함과 타협을 이겨내자. 독서할 때 소리 내서 읽자.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목소리로 천천히 여유롭게 읽는 것이 핵심이다. 독서하는 시간도 무조건 확보하도록 하자. 하루를 계획하지 않으면 본능대로 살게 된다. 내가 먼저 할 일을 계획하지 않으면 핸드폰에 사로잡힌다. 무계획으로 사는 건 진절머리 날 정도로 경험했다. 즐기는 순간은 편안하고 즐거웠지만 그 후에 다가올 현실 위험 대처를 못 한다. 안주하는 삶은 나를 취약하게 만든다. 경계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본래 사회적 교감을 하는 동물인지라 관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면 어느 정도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인터넷에 사로잡혀 게을러지고 저급 쾌락에 환호하지 않았나. 현실 마주하기 두려워 동굴에 숨지 않았나, 뭐든지 간에 끝까지 밀어붙인 일 하나 없지 않았나, 안락함에 취해 위험에 무르지 않았나. 어른이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 소년은 진작에 철을 들어야 했다. 휴대폰의 유해성을 보고 멀리해야 했다. 보고 들은 것이 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