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앞둔 일학년 담임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할머니 테러사건을 추억하며

by 물지우개

나는 2003년 3월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행인지 행운인지 큰 사건 없이 지금껏 일하고 있는데 그래도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내가 이름 짓기를 ‘할머니 테러 사건’이다.

그때도 올해처럼 일 학년을 맡았다. 학교 주변은 재래시장이 가깝고 부산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동네라 연세 드신 분이 많이 살았다. 우리 반 학생 수는 19명이어서 부산 평균에 비해 적었고 조부모, 다문화, 한부모 가족인 아이가 7~8명이었다. 부모님은 거의 맞벌이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 많았다. 일 학년은 아직 어른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나이지만 대부분 부모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가정에서 하는 과제나 복습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나는 숙제를 거의 내지 않았고, 수업시간 안에 공부를 마치도록 애썼다. 일 학년 학부모님이 가장 예민한 공부가 받아쓰기이다. 나는 받아쓰기마저도 집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많이 맞힐 수 있도록 국어시간과 쉬는 시간을 쪼개어 연습했다. 1학년 1학기 국어 끝 무렵에는 일기 쓰는 방법을 배우는데, 나는 일기장을 학교에 두고 1교시 전에 일기를 쓰도록 했다.

부모님이 도와주지 못할수록 학교생활의 효율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는 부모의 역할-책가방과 각종 준비물 챙기기, 연필 깎기, 머리 묶기, 손과 손톱을 포함한 각종 위생상태 확인하기, 계절에 맞는 옷 입기, 물 챙기기, 약 먹이기까지 해야 하니 1학년 담임은 교사보다 엄마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학습의 질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그해 우리 일 학년 담임 3명은 오후에 매일 모여 다음날 수업에 대해 같이 연구하고 준비했다.


능력 있는 교사도 아니고 따뜻한 엄마도 아닌 나는 이 역할을 감당하는데 힘이 부쳤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니 마음이 급하고 불안했다. 늘 쫓기는 느낌이랄까? 해야 할 일이 많아 나는 늘 바쁘지만 아이들은 따라오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0교시부터 하교하는 순간까지 아이들과 수업했다. 사건은 이때 일어났다.


그날은 통합교과시간에 색종이로 만들기를 해서 교실이 엉망이었다. 바닥청소야 어린이를 집에 보내고 나 혼자 나중에 하면 되는데 자기가 쓴 학습자료-풀, 가위, 색종이, 교과서는 어린이 스스로 정리해야 했다. 거기다가 아직도 완성 못한 어린이가 있어 나는 옆에서 도와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자긴 다 마쳤다고 집에 가야 한다고 우기는 아이, 완성 못했다고 울상인 아이, 아직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아이로 뒤섞여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미 마치는 종이 쳤으니 나는 일단 정리를 끝낸 아이는 가도 좋다고 했다. 몇은 가방을 메고 갔고 몇은 나와 함께 완성하거나 정리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교실 문이 퍽! 열렸다.


“도대체 왜 수업을 안 마치노? 다른 반은 다 집에 가는데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노? 선생은 아를 빨리빨리 집에 안 보내주고 뭐 하는 거고?”


시끌시끌하던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고 교실 문으로 갔다. 할머니였다.


“왜 그러세요? 누구 할머니세요?”

“내가 **이를 저 밑에서 맨날 얼마나 기다리는지 아나? 참다 참다 오늘은 도저히 못 참아서 올라왔다.”

“아, **이가 아직 공부를 다 못 끝내서 늦었네요. **아, 할머니 기다리시니까 얼른 정리하고 가라.”


나는 지켜보는 아이들이 있으니 상황을 얼른 수습하려고 **이의 책상에 가서 정리를 거들었다. 할머니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지 큰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 **이 부모가 바빠서 내가 아를 챙기는데 할매가 챙긴다고 선생 니 깔보나?”

“할머니 왜 이러세요. 아직 교실에 애들이 있어요. 다 끝났으니까 **이 데리고 얼른 가세요.”

“다른 사람한테 들으니까 선생 소문도 별로 안 좋드만 왜 우리 아만 싫어하노? 다른 애들은 빨리 보내면서 왜 맨날 우리 아만 늦게 보내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도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할머니, 애들 있는데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교실 문을 열고 화부터 내시면 어떡해요? 도대체 무슨 소문인지 한번 말씀해 보세요. 진짜 궁금하네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 하시는지 모르는데 저는 **이를 싫어한 적 없습니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오고 옆 반 선생님까지 달려왔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당한 막말 세례에 참을 수 없어 할머니를 향해 싸움 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이가 할머니를 말렸다.


“할머니, 그만해. 할머니 나 다했다. 집에 가자.”


**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속도가 늦다. 이름만 겨우 쓸 정도고 글을 읽는 발음도 어눌하다. 걸음걸이도 느리다. 자기 물건을 잘 못 챙기니 정리도 느리다. **이는 색칠만큼은 꼼꼼한데 입을 오므린 채 크레파스 쥔 손에 힘을 주고 칠하는 모습은 귀엽다. 친구들은 색종이를 오려 붙이기만 하는데 **는 거기다 색칠까지 하느라 더 늦었다. 평소 **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표정도 많지 않았다. 울지 않았지만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런 **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할머니를 말리고 있었다. **이는 이 상황을 창피해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의 얼굴은 타오르는 내 전투력에 찬물을 부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할머니께서 힘드셨나 봐요. 제가 전화드릴게요. 얼른 **데리고 가세요.”


상황은 종료되고 아이들은 하교했다. 교실 바닥에 뒹구는 종이 쓰레기처럼 기분이 참담했다. 억지 애를 쓰니 애쓴 보람은커녕 욕만 먹는구나 싶었다. 나는 도대체 애들과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동상이몽인가 허무해졌다.

그날 이후 내가 **이를 전처럼 봤다면 거짓말이다. **이를 볼 때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인격 수양의 시간이었다. 할머니 테러사건을 계기로 그해 나는 교사로서 확실히 성장했다. 교사의 마음가짐을 책이 아니라 테러로 배웠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자. 완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미완성이 무의미하지 않다. 나의 부족함을 깨끗이 인정하자. 기분 좋게 가르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일 학년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열심히 끝까지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즐겁고 욕심 없는 선생님이 더 훌륭하다.


2학기 개학이 코앞이다. 일 학년 앞에 서기 전에 할머니 테러사건을 추억한다. 올해도 테러 예방을 위해 마음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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