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괜찮아요. 그러면서 크는 거예요
3월이다. 나는 다시, 새로운 담임이 되었다. 아이들은 새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크다. 내가 새로운 아이들을 향한 그것보다도 말이다. 담임은 하나지만 고객님들은 스물여섯이니까. 젊고 예쁘고 상냥하고 친절한 선생님이면 좋겠지만 어느 하나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점수를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학생과 교사 사이에 최소한의 경계만 유지할 정도로 나는 첫날부터 나를 낮추기로 마음먹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나는 더 꼰대가 되어가고, 아이들은 더 똑똑해진다는 점을 절감한다. 나를 향한 따사롭고 호의적인 눈빛보다 원망과 비난을 내포한 듯 날카로운 눈빛을 나는 더 세게 느낀다. 긍정적인 사람이 좋다고 아이들과 첫 만남에서 당당히 선언했지만 고백컨데 나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지금은 오로지 눈으로만 아니, 눈빛으로만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실로 그들의 눈빛은 따갑고 부담스럽다. 새로운 선생님이 불편한 듯 나와 눈 마주침을 거부하는 그 눈마저도 나는 공격적으로 다가온다.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 시리즈 1권에는 ‘소망의 거울’이 나온다. 그 거울은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면의 간절한 소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소망의 거울 앞에 선다면? 거울에는 어떤 장면이 나올까? 적어도 교사는 아니리라. 3월의 평일 아침이 교사에게 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간인데 공포의 오늘 출근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내 내면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 소망은 적어도 남을 가르치는 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승강기처럼 빠르게 결론짓고 나니, 나는 문득 낙이 없다(없어진다).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할 수도 없는 이 업을 위해 오늘도 꾸역꾸역 나를 밀어낸다 생각하면 나도 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가엽다.
나는 로봇처럼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으로 매 순간 말하고 행동하고 싶지만 늘 실패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수업이 마음에 안 든다. 아이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엄청나게 지껄이지만 그들에게 바른말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확신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자주 후회하고 실망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늘 실수하고 상처를 준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행복한 선생님으로 살 수 없다(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수업한 국어 1단원 5차시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4학년 살이는 인생에서 한 번뿐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부끄러움이나 죄책감도 충분히 견딜만한 얼굴 두께가 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는 게 어쩌면 다행일까. 대신 나는 소망한다. 이 업 말고 이만한 월급과 복지를 보장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일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이다(이 일도 잘한다고 말할 수 없어 글을 쓰지만).
퇴근길 도로가에 벌써 목련이 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겨울눈이 엄지손가락만 했는데 복스러운 눈덩이 같은 꽃이 가득하다. 매년 피우는 꽃을 보며 나무는 만족할까. 봄이면 늘 꽃이 폈지만 한 번도 같지 않았다. 꽃은 오로지 봄이 만든 것은 아니다. 나무는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보내는 동안 후회와 실망의 에너지로 마음에 차지 않는 겨울눈을 키웠고, 개화와 만개를 지나 떨어짐의 순간까지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번 보았던 아름다운 목련꽃은 나무에게는 최고도, 최선도 아닐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탐스럽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고 싶었을지도.
다시, 소망의 거울 앞에 선다면 아마도 나는 교단에 서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좋으면 나도 좋고, 내가 웃을 때 아이들도 웃는 선생님 말이다. 감정 조절에 늘 실패하여 희로애락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매 시간 교수법에 부족함이 보여도 아이들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선생님 말이다.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해도 너희들의 담임이 되어 행복하다 말하는 선생님 말이다. 그러고는 이 업으로 살아서 참 고마운 인생이었다 되뇌는 할머니가 나타나리라.
내일은 공부는 잠시 접고 아이들과 목련 아래에서 걸어야겠다. 사진도 찍고 농담도 하고 늘 하던 잔소리도 해야지. 나는 분명 또 실수를 뚝뚝 흘리고, 후회로 자주 아프겠지만 목련 닮은 아이들은 분명 ‘선생님, 괜찮아요. 그러면서 크는 거예요’ 라며 위로해주리라 믿는다.
The happiest man on earth would be able to use the Mirror of Erised(desire) like a normal mirror, that is, he would look into it and see himself exactly as he is.
-Professor Dombledore's ,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