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엄마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

by 물지우개

내가 가장 싫을 때는 나에게서 엄마가 보일 때이다. 내가 엄마처럼 말하거나 행동할 때 나는 나를 견딜 수 없다.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나에게 엄마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면 당황스러움을 넘어 스스로 혐오감을 느낀다. 원망과 절망이 왔다 갔다 한다.


엄마는 한마디로 억척스럽다. 엄마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끔찍하게 가난했고 딸이라 희생을 강요당했다. 하고 싶던 공부를 하지 못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가 반드시 가는 길처럼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호된 시집살이를 했다. 엄마는 쪼들리는 살림을 억척스러움으로 막아 냈다. 지금도 관성처럼 일을 놓지 않으며 일하지 않으면 여기저기가 아프다. 돈에 인색하고 철저히 계산적이고 개인적이다. 주장이 강하고 목소리가 크며 겁이 많다.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오셨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불행하게 나는 엄마를 닮아버렸다.


은박지로 곱게 싼 불고기에 반듯한 계란말이, 먹기 좋게 담긴 과일에다가 엄마의 손편지가 맨 아래에 접혀서 놓여 있는 친구의 도시락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직접 만난 친구의 엄마는 더 놀라웠다. 말투와 행동 그 모든 결이 놀랍도록 생소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를 질투했다. 엄마를 닮은 친구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친구와 가까워질수록 나는 괴로웠다.

육아의 위기 상황에서 나에게 엄마가 나타났다. ‘진짜는 위기에서 드러난다’는 말처럼 나는 꼭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물론 아이들의 표정에서 어릴 때 내가 보일 때는 아차 싶었다. 진절머리 나게 엄마가 싫다는 그 표정 - 원망과 절망이 오가는 아이들의 눈물이 나를 아프게 때려도 노력이 무색하게 엄마를 닮은 나는 잘 바뀌지 않았다. 나는 도시락과 편지는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사려 깊은 말과 행동은 흉내 낼 수 없었다. 뼛속까지 엄마는 내 안에 있었으니까.


엄마에게 뇌경색이 왔다. 다행히 증상이 경미하지만, 엄마는 처음 입원을 했고 나는 처음 간병을 했다. 뇌로 피가 잘 갈 수 있도록 엄마는 누워만 있어야 했다. 볼 일을 누워서 해야 하고 씻지 못하는 엄마는 크게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의 답답함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막말과 과격한 행동을 포함(자세하게 차마 표현할 수 없다)한 분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함이 우울감으로 귀결되는 나와는 다르다 싶으면서도 우울과 분노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니 나는 다시 절망스럽다. 엄마는 미래의 나니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 딸이니까. 뇌경색은 재발이 잦고 정도가 심해지는 병이라 하니 엄마는 이제 고작 시작인 셈이다. 옆 침대의 할머니처럼 엄마의 뇌경색이 치매로 갈 것 같아 나는 불안하다. 이보다 더한 엄마를, 아니 나를 마주할까 봐 나는 무섭다. 병간호 이틀 만에 나는 울었고, 입원 사흘째가 되는 오늘 아침 엄마도 울었다. 엄마를 벗어나려고 애쓰면 엄마가 나를 따라왔다. 가족들이 하는 위로의 말이 가시처럼 와서 박힐 정도로 지금 나는 우울하다. 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과연 엄마의 성격 로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엄마와 다른 내 길에서 엄마의 길을 쳐다보며 절망 말고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 내 길은 분명 엄마와 다르고, 내 딸이 가는 길은 내 길과 다르다고, 세 개의 길이 겹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에게서 엄마를 빼는 방법은 오로지 말을 줄이는 것뿐이다. 질투하고, 닮으려 애썼던 상냥함까지는 감히 바라지 않는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나는 각종 위기 상황에서 엄마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기를 쓰고 입을 닫아야겠다. 진땀이 나도록 참는 수밖에 없다. 간혹 우울해지더라도 그 길만이 엄마와 다른 엄마가 되는 방법이니까. 엄마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깨닫는 날 우울함이 분명 사라져 있을 테니까.


부디 나에게 엄마가 튀어나오지 않기를.


매거진의 이전글우울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