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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Aug 09. 2022

수행 기록 34

육조단경 2

수행 연습해 본 소감     


한 주간 누구에게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해보는 수행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고 경상도 사투리를 좋아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억양과 강세가 강해야 맛이 나는 말이지요. 제 귀에는 모든 서울말, 심지어 화내는 서울말까지도 부드럽게 들립니다. 제게 부드럽게 말하라는 뜻은 경상도 사투리를 버리고 서울말을 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서울말이 외국어보다 어렵게 느껴집니다. 영어는 좀 틀려도 우리말이 아니니까 넘어갈 수 있는데 서울말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서울말을 쓰면 우스꽝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저는 서울에 가서도 꿋꿋하게 사투리로 말합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수행이 쉽지 않은 수행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저는 목표치를 낮게 두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해 보자고 말이죠.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경상도 사투리는 어쩌면 발음만 억센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도 억세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부드럽게 말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뚱뚱한 사람이 작은 옷을 입거나 마른 사람이 커다란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고 이상하고 불편한 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꿀을 좋아해서 꿀물을 종종 스스로 타 먹습니다. 그런데 꿀 병은 끈적끈적하기에 병을 놓은 자리마다 끈적끈적해집니다. 저는 그 점이 싫어 천을 깔아 두고 그 위에 꿀 병을 얹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무 데나 꿀 병을 놓길래 그때마다 조용히 상판을 닦고 천 위로 꿀 병을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더워 그런지 남편의 무변화에 순간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수행자이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꿀 병은 끈적거리니까 천 위에 올려요. 상판이 끈적끈적해지고 그때마다 내가 닦아야 하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에 저를 째려보면서 또 강세를 준다고, 말 좀 살살하라며 저한테 핀잔을 주었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제가 분명 의식을 하고 부드럽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제 생각 자체는 부드러웠는데 경상도 사투리 억양 상 부드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가 구사하는 경상도 사투리로는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잔소리를 서울말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고 우스꽝스러운 잔소리를 할 바엔 잔소리를 안 하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법문 들은 소감 나누기     


‘일체 만법 그중에 진(眞)이란 없으니 그러므로 진이 있다 여기지 말라. 만약 진이 있다고 보면 이러한 견해는 모두 다 진이 아니다. 만약 능히 스스로 진이라 할진대 거짓(仮)을 여읨이 곧 마음의 진이다.’

 -육조단경 제10중-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주로 주고받는 이야기 대부분이 경전에서 말한 ‘진’ 아닐까요. 남편은 이래야 하고, 아이들은 이래야 하고, 이 사람은 이래야 하는데 저렇더라,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런 모든 견해가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이야깃거리는 주로 좋고 싫음,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니까요. 진이 있다고 생각하니 진을 거스르는 타인이나 상황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진짜 ‘진’이라면 늘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고 변치 않아야 하는데 그런 ‘진’은 없잖아요. 오늘 마음과 내일 마음이 다르고 게다가 어제 마음조차 금방 까먹으니까요.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친구와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는 저와의 첫 만남 장면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친구가 메모지가 필요해서 제게 한 장 빌려달라고 했는데 저는 온전한 한 장 주지 않고 반을 찢어서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제가 알뜰하다고 생각했다 말했지만, 사실은 지지리 궁상맞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쓸 내용이 별로 없어서 제가 반만 준 것이 아닐까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때 그 장면이 번개처럼 떠올랐어요. 저는 사실 처음 본 그 친구에게 제 소중한 메모지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 준다고 말하면 제가 너무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았고, 한 장을 다 주자니 너무 아까워서 반만 준 것이었어요. 친한 친구였다면 다 줬겠지만 친하지 않으니까요. 각자 다 자기가 생각하는 ‘진’이 달랐던 셈이죠. 각자의 생각이 각자 처지에서 다 옳았으나 일치하지 않았으니 어느 생각도 옳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속마음을 전부 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말과 행동에 있어서 솔직하게 표현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상대의 말과 행동에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의 판단이 일어난다면 ‘지금 내 생각은 ‘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거짓에 불과하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나에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을 여읨이 곧 마음이 진이니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이 사라지는 것이 수행의 목표겠지요. 수행은 내 마음속에 거짓을 없애는 일, 즉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을 인식하고 그저 받아들이는 일, 좋고 싫음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이 생기더라도 곧 사라지고 언제든지 변하는 거짓에 불과하다며 집착하지 않은 일이 수행의 길입니다.     



주제 질문-최근 남의 허물을 말한 적은? 상대의 어떤 점이 걸리는지?     


며칠 전 엄마가 기침이 심해 병원에 가니 천식 진단을 받으셨다 합니다. 엄마는 아직도 일하십니다. 올해 초에는 약한 뇌경색이 와서 쓰러진 적도 있으신데 일을 관두지 않으십니다. 엄마는 땀이 많고 여름에 특히 기력이 쇠하신 편이고, 호흡기가 약해서 감기를 자주 하십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자주 다니시면서도 일을 관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아직은 일할 수 있다고, 더 늙으면 어차피 관둘 텐데 지금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부모님은 월세도 나오고 연금도 받으시기 때문에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렵지는 않습니다. 남편마저도 장모님, 장인어른은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시느냐고 제게 빨리 그만두시라는 말을 하라고 다그칩니다. 일을 관두지 않는 부모님을 보면 저는 너무 답답합니다.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고 말해도 엄마 아빠는 제게 역정만 내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젊은 시절을 어렵게 사셨고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 오히려 가만있으면 더 몸이 아프고 불안해하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60대 후반의 부모님이 두 분이 아직도 직장 생활한다고 하면 다들 능력 있다, 대단하다 하지만 저는 무능한 자식이 된 것처럼 마음이 불편합니다. 제 마음 불편함은 제가 감당할 몫이지만 부모님 마음이 불편하면 그건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두 분이 힘든 일을 하셔도 두 분 마음이 편안하다면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지금 두 분이 받는 월급만큼 꼬박꼬박 용돈을 드리지 못할 바에는 부모님께 이래라저래라 말할 권리도 없고요. 저는 그저 제게 부모님이 늘 당부하는 것처럼 제 가정 잘 꾸려나가고 우리 식구 몸 건강히 행복하게 살면 그게 효도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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