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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Aug 02. 2022

수행 기록 33

가끔은 아니 자주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죽음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로 죽어야 하나 싶다가, 죽어도 증명이 안 된다면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 싶다. 삶의 의미를 죽지 못하는 데서 찾는다는 사실이 좀 슬프지만 내가 죽어봤자 분명 다 잘 살 거라서 나는 그냥 살기로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사는 일이 좀 가벼워진다. 아이들이 놀다가 꺾어버리는 한 장의 나뭇잎처럼, 지나가는 발걸음에 무참히 밟히는 개미처럼. 그들이 나뭇잎과 개미의 파멸에 대해 털끝만큼도 애도하지 않는 일이 어쩌면 나뭇잎과 개미 스스로 가볍게 살다가 가볍게 가겠다 마음먹었기에 부당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내 삶에 큰 의미나 가치를 두지 않고 그저 가볍게 살기로 한다.      


가끔은 아니 자주 나는 눈물을 떠올린다. 비는 물론이거니와 구름도 하늘도 나무도 땅도 바람도 보이는 사물에서 눈물을 떠올린다. 사람처럼 그것들도 다 눈물을 머금고 있다. 참다가 터뜨리기도 하고 참다 자기도 모르게 흐르기도 하고 또 참다 조금씩 스며들기도 한다. 참는 데 익숙해지다 제 잎을 노랗게 태워버린 나무를 본다. 왜 사람들을 그들에게 충분한 눈물을 허락하지 않는지. 울고 싶을 때 실컷 울 수 있는 권리마저 없는 존재를 보며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고 조용히 제 몸을 태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어쩌면 가볍게 살다 가볍게 가는 길이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나는 눈물이 멈추고 그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습기를 머금고도 무겁지 않고 스치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내 생은 그저 찰나의 순간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살아있음이 뚜렷한 순간에는 편히 뉘어두었던 갖가지 생각마저 팔딱거리며 일어나 나를 흥분시킨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내 생각에게 괜찮다 괜찮다 다독여준다. 물론 쉽게 괜찮아질 리가 없다. 이때는 말과 행동이 헛나오기 일쑤다.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다 도리질을 해봐도 엄연히 내 것이라 주워 담을 수 없다. 눈을 감아야 하는 순간마저도 눈을 뜨고 싶은 본능처럼 내 말과 행동은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증명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에 혐오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말과 행동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려 내 것임을 가볍게 인정할 뿐이다. 그래, 나는 잘살아있다!     




오늘을 가볍게 살았느냐 물으신다면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종일 몸을 걱정했고, 배가 고팠고 배가 불렀습니다. 고민하던 옷을 결국 질렀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차를 탔습니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잠이 들었고 불필요한 목욕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타인에게서 기대와 실망과 즐거움과 답답함이 파도처럼 넘실거렸습니다. 제 가족에게는 분별심이 넘치고 넘쳤습니다. 가볍지 못한 매 순간이었지만 이렇게 돌아보며 제 말과 행동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후 말려버릴 생각입니다. 저는 내일도 가볍게 살지 못하겠지만 가볍게 보낼 예정입니다. 저는 눈물과 죽음을 언제든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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