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지우개 Jul 26. 2022

수행 기록 32

육조단경 1

수행 연습해본 소감     


 한 주간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연습을 위해 "제 생각에는 ~ "이라고 말하는 수행을 해 보았습니다. 진주에 사시는 형님이 오랜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의 막내와 저희 큰애는 나이가 같습니다. 형님은 겨울방학 때 애들을 서울에 있는 기숙학원에 한 달간 보내보자며 제 의향을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큰아이를 중3 말에 거기 보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며 둘째는 무엇보다 본인이 가고 싶어 해서 보내려는데 사촌인 제 딸도 같이 보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교육에 큰 관심이 없던 형님이 사교육 제안에 우선 놀랐고, 그 금액에 또 놀랐습니다. 저는 “제 생각에 우리 아이는 그런 곳에 갈 만큼 상위권도 아닐뿐더러 그 밀폐된 곳에서 공부하려고 할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형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곳에 가면 좋은 자극도 받고, 공부하는 방법도 배워 온다면서 효과가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거부반응이 마구 일어났으나 그저 “네, 네.”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점심을 먹으며 기숙학원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당연히 아이가 거부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아이는 “내가 공부 못하니까 엄마는 당연히 내가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했겠네. 그런데 나도 거기 가보고 싶어.”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적이 좋아야 그 학원에서 받아준다고 하니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시험은 잘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제 기준으로 속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가 저의 낮은 기대치를 완전히 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 제 생각대로 성적이 안 돼서 서울에 있는 그 기숙학원에 못 가더라도 목돈이 굳으니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문 들은 소감 나누기     


 법문 뒤에 선불교의 정착과 발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국왕이나 부자의 보시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선불교의 모습을 알려주셨습니다. 의존적 경제성을 가졌던 교종은 불교의 융성과 탄압에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선종은 불교가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도 국가재정을 축내지 않는 자립적인 성격 덕분에 비판과 탄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름방학을 하기 전에 방학 기간에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할 교사를 지원받는다는 공지가 떴습니다. 당연히 무보수라 꼭 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보수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보수가 있는 수업은 이미 할 사람이 정해져 있어서 무보수 프로그램만 자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에는 돈을 떠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무료 봉사하는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지만 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대하다가도 마음이 힘든 상황이 오면 ‘이 아이들 덕분에 내가 월급을 받는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느 회사원처럼 출근과 동시에 퇴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힘겨운 출근을 견디는 이유도 월급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학교에서 무보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건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날, 우리 둘째가 실과시간에 바느질을 배우는데 학교 수업만으로는 영 못 따라가겠다며 제게 가르쳐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홈질, 박음질, 단추 달기를 가르쳐주니 아이가 곧잘 따라 하는 것이 기특하고 저도 바느질을 좋아하다 보니 알려주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아이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바느질을 가르쳐주는 무보수 프로그램 수업을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동료들은 저를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저를 아는 지인들은 안 하던 짓을 왜 하느냐고 의아해 하더라고요. 특히 남편이 가장 비아냥거리며 딴지를 걸었습니다. 방학과 동시에 집에서 실컷 널브러지고 싶은 게 정상인데, 막상 바느질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 되니 이상하게 출근길 마음이 가볍더라고요. 일찍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을까, 오늘은 좀 더 친절해야겠다 뭐 이런 놀라운 마음도 살짝 들더라고요. 법문을 들으니 돈에 의존적인 출근이 아니라 선종처럼 철저히 자립적인 출근이라 이렇게 마음이 자유로웠구나 싶었습니다. 내일은 바느질 수업 4일 중 3일째입니다. 아이들이 바느질하다가 막혀서 도와달라고 우르르 나오더라도 ‘내일은 좀 더 부드럽게 말해야겠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내가 더 친절히 알려줘야겠다’라는 훌륭한 선생님 같은 생각을 월급의 노예인 제가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주제 질문: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은 무엇인가? 그중에서 어렵거나 힘들게 느껴지는 역할이 있다면?  

   

저는 엄마고, 아내이고, 우리 반 담임이고, 딸이고, 며느리입니다. 솔직히 다 어렵고 힘듭니다. 가장 힘든 것을 고르자면 ‘아내’입니다.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라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멀고, 권위적이고,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제가 좋아서 결혼했지만 맞춰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쉬운 것을 고르라면 ‘며느리’입니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시부모님이지만, 제 생각에는 아들을 바람직하게 사랑하시는 분들이라 며느리 마음을 잘 헤아려 말과 행동을 하십니다. 덕분에 저는 대한민국의 많은 며느리가 고통받는 그 갈등이 없습니다. 제가 까칠한 남편을 견디며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부모님의 따뜻한 말씀 덕분입니다. “아가, 반찬 만들건데 네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해주면 좋겠다.”, “아가, 내 아들 내 손자 잘 거둬줘서 정말 고맙다.”, 심지어 남편이 승진했을 때도 “아가, 아비가 잘된 건 다 네가 고생한 덕분이다. 네가 애써서 그렇다.”, “아가, 우리는 늘 아들보다 며느리 편이다.”, “네가 건강해야 네 가정이 편안하다. 네 건강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해라.” 늘 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해주십니다. 더 늘어놓을 에피소드가 많지만, 독자들에게 거부감이 들까 봐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미래에 제 아들이 결혼한다면(사실 제 소원입니다) 저는 잘 배웠기 때문에 좋은 시어머니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남편 인품은 별로지만, 남편 덕분에 만난 시부모님 인품은 너무나 훌륭하니,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은 진리임이 분명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행 기록 3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