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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Jul 19. 2022

수행 기록 31

반야심경 4주 -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수행 연습해본 소감     


이번 주는 화와 짜증이 날 때 "화(짜증)가 났구나" 알아차리고, 밖으로 내는 반응을 멈춘 후 "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하는 수행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골프를 잘 치고 싶은 마음으로 동영상도 보고 연습장에서 레슨도 받고 연습도 했습니다. 자꾸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공이 잘 맞으면 기분이 좋았지만 안 맞으면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연습하면 잘 될 줄 알고 피로해도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등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이 심해지더니 어제는 숨만 쉬어도 아프고 기침하면 너무 아프길래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고는 갈비뼈 골절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통제밖에 처방할 약이 없다며 쉬는 거 말고는 달리 치료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쉬엄쉬엄 연습했더라면 공이 안 맞아 기분 나쁜 일도 없고, 갈비뼈를 다치는 일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욕심에 몸을 혹사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오는지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골프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가볍게, 편안하게, 즐겁게 운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참에 과격한 운동 대신 가볍게 바람 쐬며 산책하거나 독서를 해야겠다 생각합니다. 제 어리석음에 대한 과보입니다.      



법문 들은 소감 나누기     


‘저 사람들이 중생이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내는 것이 중생이다. 실은 중생이다 할 만한 존재가 없다. 무명(無明)이라 할 것도 없고(무무명無無明), 무명이 다한다 할 것도 없다(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저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을 고칠 수 없으니 내가 힘이 들지만 저 사람은 나쁘다 할 것도 없고 고쳐야 할 것도 없다 생각하면 그냥 해결이 된다는 스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교실에 전자칠판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저와 아이들은 요즘 수업이 힘듭니다. 저는 오로지 말로만 하는 설명이 힘들고 아이들은 지루한 설명만 듣고 있자니 힘듭니다. 중간중간에 관련 영상이나 사진도 봐야 하고,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저는 목이 아프고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전자칠판이 들어온 때가 작년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교실에 대형 티브이가 있었지만 티브이 없이 수업할 때도 많았습니다. 사실 좋은 수업은 미디어에 의존하는 수업이 아닙니다. 미디어기기는 어디까지나 보조지, 주된 자료는 교사가 직접 준비해야 합니다. 전자칠판이 없으니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는지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분필로 칠판에 글을 쓰는 것도 어찌나 어색하던지! 전자칠판을 빨리 수리하던가 교체해 달라고 독촉 전화를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제 모습이 못나 보였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직시하게 되더라고요. 제 수업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하는 것처럼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교과서만으로는 도저히 수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시각적으로 효과적인 수업자료를 창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더라고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수업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내 수업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수업 마치고 나서는 ‘오늘 수업이 많이 지루했을 텐데 듣느라 수고 많았고 고맙다.’며 인정해주었습니다. 법문을 알기 전이었다면 전자칠판이 고장 난 상황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을 테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탓하며 한심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오늘 오후에 전자칠판이 교체되었습니다. 저는 전자칠판만 봐도 그저 좋았고, 교체해 주러 오신 분도 그저 고마웠습니다.     



주제 질문-반야심경 1번 쓰기, 써 본 소감은?     


우리말 반야심경도 1번 쓰고, 한자 본도 1번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말과 한자 본을 각각 2번씩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반야바라밀다행’을 어찌해야 하는지 묻는 사리자에게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알고,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열반적정에 이르라’ 하시며 말씀을 마칩니다. 간결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금강경을 배울 때도 그렇고, 법륜스님 말씀 들을 때도 느꼈지만 말씀이 모두 비유가 탁월합니다. 이제 한자 본을 읽거나 말할 때도 뜻을 알아 후련합니다. 잊지 않도록 자주 독송하겠습니다.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 말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여!

사리자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그러하니라.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사리자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불구부정 부증불감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시고 고중무색 무수상행식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무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무색성행미촉법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무무명 역무무명진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의반야바라밀다고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능제일체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진실불허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고설 발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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