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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Jul 12. 2022

수행 기록 30

반야심경 3주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수행 연습해본 소감     


이번 주도 지난주처럼 화를 관찰하는 수행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학교는 50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12:40부터 5교시가 시작됩니다. 수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3명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디 갔냐고 물으니 다들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었으나 일단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2:50이 되니 3명이 우르르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왜 늦었냐고 물었습니다. 비를 맞아 마스크가 젖었고, 새 마스크를 받으러 보건실에 다녀오다 보니 늦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인지 몰랐냐고 물었습니다. 3명 다 수업 시간인지 알았다고 하는 순간 저는 화가 나더라고요. 새 마스크는 우리 교실에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건실은 우리 교실과 그리 멀지 않아 다녀오는 데 1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업시간인지도 알았고, 보건실도 가까운데 10분이나 지나서 들어왔다는 사실은 너희들이 5교시 공부하기 싫다는 뜻이 아니냐고 화를 내며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들을 변호할 사람이 있느냐며 아이들 쪽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일어나더니 보건실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늦었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 3명이 평소 복도 다닐 때 천천히 걷는 아이들이냐고 반문했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젓더라고요.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들더니 보건실까지 가까운 길로 가지 않고 빙 둘러서 가서 늦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저 3명이 평소 급식실이나 운동장 갈 때 가까운 길로 가지 않고 빙 둘러서 가는 아이들이냐고 물으니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또 한 아이가 일어나더니 오랜만에 비가 오니 비를 흠뻑 맞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저는 이해가 확! 되었습니다. 저도 비가 세차게 내리면 차를 몰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저는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비 맞는 걸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막상 들어오려고 하니 마스크가 젖어 버렸으니까요. 저는 이해는 되지만 규칙을 어긴 행동이었다고 말했고, 우리 반 약속대로 3명에게 명심보감을 2장 쓰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에도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세찬 비를 보면서 수업 시간이라도 한 번쯤은 실컷 비를 맞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성교육이 별건가요.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니까요.



법문들은 소감 나누기     


저는 7강에서 ‘보살의 마지막 경지가 ‘화작化作’이다. 가르치는 자도 배운 자도 없는 세상에서 중생이 깨우친다. 세상에 원효라고 하는 자는 없다. 원효의 행적을 적은 기록은 없으나 전국에 원효의 행적이 없는 곳이 없다. 원효가 자기를 버리니 수만의 원효가 세상에 있다. 이것이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화작化作이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 연꽃을 피우는 진흙이 된다.‘라는 법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물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김에 조개를 줍는 것입니다. 제 큰아이가 중3인데 요즘 아이를 볼 때마다 걱정이 많습니다. 아이는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합니다.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지만 제가 보기에 요령이 부족하고, 집중력도 부족하여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저 아이가 나중에 제 밥벌이는 하면서 살 수 있을지, 도대체 뭘 하면서 먹고살지 걱정스럽습니다. 요즘에는 학원비도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길에 데려다주면서도 이 모든 노력이 다 헛수고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아이에게 크게 티는 안 내지만 아이를 마주하는 일이 마냥 편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런 마음이 더 커질 듯한 불안감도 한몫합니다. 성적이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이를 바라보는 저의 한심한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제가 어릴 때 저를 그렇게 보셨을까요.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제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이가 공부를 잘못한다면 제가 또 뭘 할 수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엄마이니 진짜 엄마가 되는 길, '화작'이 아닐까요. 스님이 <엄마 수업>이라는 책에서 쓰신 내용처럼 부모가 화목해서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켜야 하고, 부모가 모범을 보여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해야 하고, 사춘기 시기에는 그저 지켜봐 주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겠지요. 넘어지고 자빠져도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실패하더라도 자아가 성숙해지는 때이니 안타까워도 기다려 주는 것 이것 말고는 할 것이 없겠지요.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인생을 살뿐인데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마치 내 인생인 양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생각으로 사랑을 쏟다 보니 자식이 내 마음 같지 않아 괴롭다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홀로 서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저는 법문처럼 그저 진짜 엄마가 되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몰랐던 제가 한심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집니다.      



주제 질문-한 생각에 사로잡혀 주위에서 도움 되는 말을 해줘도 듣지 못했던 경험은?     


제 교직생활 중에 가장 많이 담임한 학년이 1학년입니다. 12월 말이 되면 다음 해 어느 학년을 담임할지 희망서를 적는데요. 저는 1학년을 1 지망으로 적었고, 1학년은 희망자가 적기 때문에 당연히 담임이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동료분들이 ' 1학년은 여러 가지로 힘들다, 다시 생각해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땐 1학년이 가르치기 편해 보이고 학부모님 만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제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1학년을 하면 제가 우리 아이들을 대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딱 3일 만에 저는 1학년 담임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정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년 지나면 그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1학년을 같은 이유로 1 지망에 적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로 엄청 후회했고요. 아무래도 희망서를 적을 때마다 뭐에 홀린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학교를 옮기면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제 1학년 담임은 없다고. 저는 654321로 희망서를 적었고 다행히 5학년 담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학년 담임도 기대만큼 좋은 점이 많지는 않더라고요. 오늘 우연찮게 2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이 결근하셔서 제가 한 시간 수업을 했는데요. 너무 귀엽고 해맑고 이뻐서 이렇게 가만히 쳐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길래 저는 친절하게 갔다 오라 그랬더니 그 이후로 10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오더니 선생님 오늘 급식이 뭔지 아세요?, 선생님은 몇 학년 몇 반 선생님이에요?, 선생님 쟤가 풀이 없대요, 선생님 저 글자 잘 못썼어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 선생님 이 종이 버릴까요? 질문이 끊이질 않길래 아차, 내가 또 잊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다시 제 교실로 돌아오니 우리 반 아이들은 저한테 별로 말도 안 걸고, 알아서 교과서도 꺼내고, 가만히 앉아 있길래 저는 이 아이들이 참 고맙고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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