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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Jun 17. 2023

감침질(feat. 들깨)

안희연 [단어의 집]을 읽고

 바느질의 승부는 늘 ‘안’이다. 이때의 안이란 원단의 안쪽을 말한다. 뒤집었을 때 안의 바느질이 튼튼하고 고르면 겉은 볼 필요가 없다. 바느질은 주로 겉과 겉을 맞대어 안에서 작업하는데 중요한 완성선을 박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바로 감침질이다. 본바느질(완성선을 박는 바느질) 이전에 우둘투둘한 시접을 깔끔히 정리해 놓지 않으면 결국 그 옷은 입을 수 없는 옷이 되고 마는데 이때 시접을 처리해 주는 바느질이 바로 감침질이다. 또, 감침질은 두 천을 붙이기 위해 완성선과 완성선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는데 이때는 두 천의 겉에서 작업하나 이 또한 바느질은 가늘고 짧게 해서 실의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감침질이 잘되면 이음이 튼튼하기에 옷의 내구성이 올라간다.


 부모님은 주말이면 밀양 할아버지댁으로 가신다. 부모님은 밀양에서 밭농사를 지으시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선산이라 관리 차원에서 하는 거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고추, 호박, 옥수수, 고구마, 들깨, 참깨, 배추, 오이, 가지 등 채소부터 매실, 자두, 단감, 복숭아, 머루 등 과일까지 키우는 작물이 매년 다르다. 수확물을 따지고 보면 일관성도 없고, 전문성도 없지만 두 분은 농사꾼의 후예인 양 몇 박스씩 보내주신다. 농사일이 그렇듯 시작하면 하루 종일이라 주말에도 바쁘셔서 뵙기가 쉽지 않은데 가끔 만나 밥을 먹을 때면 손톱 끝은 거뭇거뭇하고 옷은 허름하다. 하나 있는 오빠 네도 서울 살고, 우리 식구도 집에 안 붙어 있어 먹을 사람 없다고 내가 농사를 뜯어말려도 부모님은 시큰둥하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내년에는 그만둘 거라 하실 뿐 변화는 없다. 


 아이고, 들깨 때문에 걱정이다. 엄마는 몇 주 전부터 밭에 들깨를 심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이 부친다며 남편과 내가 와서 도와 달라는 말씀을 어렵게 꺼냈다. 그런 부탁을 들은 일이 거의 없어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흔쾌히 남편과 가겠노라 약속하고 남편한테도 그렇게 통보했다. 워낙 새벽형의 어른들이라 어차피 시작 시간을 맞출 수 없기에 시간약속은 따로 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우리는 눈 뜨자마자 대충 옷을 입고 뛰쳐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거대한(?) 밭의 20%는 벌써 들깨가 심겨있었다. 정서방, 주말인데 늦잠도 못 자고 빨리도 왔네. 미안해서 어쩌지. 장인, 장모님께 만큼은 세상 예의 바른, 철저한 개인주의자 정서방은 아버지가 들고 있던 곡괭이를 토스해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강하게 손 사레 치며 괭이로 구덩이 파는 일은 당신이 하겠노라 하시고는 우리더러 작은 구덩이에 들깨 모종을 한두 뿌리 넣고 단단히 흙을 덮으라고 하셨다. 


 감침질의 관건은 열심히 움직인 바늘땀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대한 실을 숨겨야 한다. 보이지는 않되 원단을 단단히 말아 넣어야 하니 쉬워 보이나 쉽지 않다. 설령 마찰로 올이 풀리더라도 단단히 여며놓은 감침질은 더 이상 풀리지 않게 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셈. 나는 구덩이에 들깨를 넣고 흙을 덮어 토닥토닥 두드리며 얼마나 올이 많이 풀렸는지 모른다. 도대체 들깨를 왜 심는 것인가. 우리 가족이 일 년간 깻잎과 들기름을 얼마나 먹는다고 이렇게 거대한 밭에 이렇게 많은 들깨 모종을 심어야 하는지. 심는 것도 이리 힘든데 가꾸고 수확하는 건 다 어찌하시려고. 엄마아빠는 심지어 60만 원을 들여 이 밭을 갈았단다. 기계도 오고 사람도 와서 모종 심기 좋게 작업을 했다며 자랑을 하시는데 나는 차라리 60만 원어치 들깨를 사 먹지. 아이고, 이 정도면 거의 들깨 농장 수준인데 엄마아빠는 이 많은 깻잎을 수확하여 장에 내다 팔 생각인지. 시작한 지 삼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온몸이 흙투성이 거지꼴에 삭신이 쑤시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다. 내가 이 정도면 곧 칠십이 다 돼 가는 저분들은 얼마나 아프실지. 도대체 들깨를 왜! 왜!!


 감침질이 전혀 되지 않다가도 보송보송한 어린 순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잘 자랐으면 싶기도 하여 꺾일라 쓰러질라 나는 조심스레 흙을 덮었다. 하나만 심으면 바람에 넘어질까 봐 서너 개를 한꺼번에 심었더니 엄마는 또 옆에서 잔소리다. 그렇게 많이 심으면 빨리 심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일이 더 많아진다, 잎이 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뽑아내야 한다고 폭격을 퍼붓는다. 나는 순간 발끈하여, 엄마 빨리 심고 싶은 마음에 대충 하는 거 아니야. 얘들이 너무 가늘잖아. 서로 기대서 쓰러지지 말라고 그렇게 한 거라고. 나는 나대로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날 선 내 반응에 엄마도 놀랐는지 아무 말도 없으시다. 어느새 비가 후드득 떨어지니 마음이 더 급해질 법도 한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침질을 하느라 작업 속도가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모종을 심기 좋게 구덩이를 파고, 남편은 그 뒤를 따르며 군데군데 모종을 뿌리고, 엄마와 나는 뿌려진 모종을 잡아 구덩이에 넣으며 흙을 덮었다. 아버지는 제일 힘든 일은 당연히 내가 해야지라며 감침질을 하셨을 테고, 엄마는 더 부지런히 움직여 사위와 딸을 후딱 보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셨을 터. 나는 이 행위 자체의 타당성과 들깨 모종의 귀여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고, 남편은 당장 집에 뛰쳐 가고 싶으나 절대 티 내선 안 되고,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모두 생각의 올을 보이지 않게 여미고 있었다.


 내가 옷을 지어 가져다주면 엄마는, 뭐 하러 옷을 만드냐, 바느질하면 눈 나빠지고 폐 나빠지고, 옷이 얼마나 한다고, 집에 옷이 이리 많은데 뭐 하러 힘든 일이 자처하니 미련하게. 당연하게 내가 지은 옷을 잘 입지도 않으신다. 만들지 마라, 힘들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라며 생각의 올을 마음껏 풀어놓으시고 나는 나대로 풀리는 올을 감추느라 전전긍긍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내가 지은 옷을 입고 활짝 웃으시는 사진을 보내주면 나는 어찌나 행복하던지.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단단히 이어질 때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4시간 정도 작업했을까 들깨대농장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들깨 모종 사이에서 우리 넷의 치열한 감침질을 볼 수 있었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서로 얼마나 애썼는지, 완성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단단히 묶으려 했던 노력 말이다. 끝나자마자 우리는 시원하게 헤어졌지만 나는 한동안 그 깻잎의 잔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은 잘 머금고 있는지, 햇빛은 잘 받고 있는지, 서로 잘 붙들어 키가 잘 크는지 어찌나 궁금하던지.


 옷을 완성하고 나면 나는 항상 뒤집어 확인한다. 감침질이 잘 되었는지 완성선이 잘 붙어 있는지 안에서 본다. 안이 예쁘면 겉은 볼 것도 없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엄마 들깨 어떻게 됐어요? 내가 심은 거 안 죽었지? 담주에 나도 갈 거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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