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우리는 다 죽은 사람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죽은 사람이지만 산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고 느낀다. 사랑하고 미워한다. 좋아하고 싫어한다. 물론 시간도 흐른다. 죽었지만 조금씩 늙어간다. 어쩌면 다시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 위에 펼쳐진 이 삶의 끝이 다시 죽음인지 모르지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다만 진짜 살아있을 때와 다른 점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대단히 자유롭다는 점.
언제부터인가 나는 숨 쉬고 살아있는 것이 그리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더라. 어차피 죽은 목숨이기에 말과 행동을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만큼 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기 싫을 때는 놀고 그러다가 문득 심심할 때는 노동을 한다. 먹을 것이 없으면 먹지 않으면 그뿐, 돈이 없으면 숨만 쉬고 있으면 된다.
이렇게 제멋대로 살다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차라리 잘된 일. 깃털처럼 가볍게 떠오르면 된다. 죽은 육신의 껍데기는 어느덧 산산이 먼지로 흩어져 어느새 날아가 버린 지 오래, 연기 같은 내 영혼은 민들레 홀씨와 함께 두둥실 떠오르다 그것도 마찬가지 부서지면 그만이다. 이제야 나는 정말 끝인 셈.
이미 죽은 목숨이라 웃기지도 않은 일에 눈치 없이 큰 소리로 깔깔거릴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겁도 없이 마음껏 좋아한다. 싫은 사람은 가차 없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욕쟁이로 불릴 만큼 나오는 대로 욕을 지껄일 수 있다. 죽은 나를 저지할 ‘벽’ 따위는 없다.
나는 그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는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다행히 살았지만, 언젠가 내 정신과 몸이, 내 의지와 자유가, 내 생각과 말이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셈. 그때부터 불안해지고 걱정이 많아진다. 집착이 생기고 두려움이 커진다. 먼지처럼 흩어질 나라도 부여잡고 싶어 진다. 그리 갈망하던 죽음인데, 분명 고통 없는 솜털같이 가벼운 죽음이었는데 꿈이라 안도하고 진짜로 숨 쉬는 지금이 감사하다. 오늘 하루를 너와 함께 잘 보내고 싶다는 의미 없는 욕심마저 든다.
사랑하는 네 손을 잡고 눈을 보며 말하고 싶다. 너도 나를 나만큼 좋아하면 좋겠다. 만약 아니라면 조금 슬프지만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릴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간다면 많이 아프고 괴로워하다 너를 미워하겠지. 미움도 지치면 결국 잊겠지. 잊을 수 있다.
너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내 마음의 벽이 가라앉다가 너를 미워하면 온통 벽이다. 내가 만든 벽에 나를 가두고는 나는 한없이 외롭다. 가버린 너를 생각하면 내 벽은 더 단단해지니 나는 그저 죽었으면 좋겠다. 죽어버리면 나도, 나를 가로막은 벽도 다 허물어질 텐데.
그래서 나는 다시 꿈을 꾸기로 했다.
내가 사는 방법은 내가 죽는 것이다. 나의 벽을 자유롭게 허무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살아있지 않는 것.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확실하다. 살아있지만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죽은 삶을 사는 꿈을 꾸는 것 외에는 단단한 나만의 벽을 제거할 수 없으니 오늘부터 나는 죽은 목숨이다 생각하고 살면 된다. 그리하면 이 도시에서 나는 살 수 있다. 어쩌면 불확실한 벽이라 살아있는 나를 지켜줄지도 모른다.
결국은 꿈에서 깨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저승에 이미 가버린 내 영혼이 꾸는 짧은 꿈일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