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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Feb 06. 2024

'인생은 고통'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한 번씩 내가 너무 옹졸해서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못나도 못나도 이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는데 못난 내 마음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오늘은 그냥 못난 걸로 포기하련다라며 그냥 방구석에 한참 동안 나를 내버려 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꽤 오랫동안 말하지 않으면 자책 지수도 좀 낮아지고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질지도. 아니, 내 못난 마음을 고쳐먹을지도.     


사람에게 싫은 부분만 생각나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어떤 희망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악의를 가지고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자꾸 그 사실을 걷어차 버린다. 이것이 바로 피해의식이라고 애써 설득해도 나는 그 문을 세게 닫는다. 우울감의 시작이다.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니 내가 하는 말에서 빈틈과 틀린 점을 자기 기준에서 콕콕 찾아내는 사람과 있다 보면 그래, 너 잘났다 네가 답이다, 나는 다 틀렸다, 나는 바보다 속으로만 외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 나온다. 그러고 나서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 말이 다 맞는 것 같고 그 비난이 너무나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며 슬퍼진다. 세게 얻어맞은 듯 얼얼하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이나 악덕은 깨닫지 못하고 타인의 결점이나 악덕만 알아챈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자신의 결점이나 악덕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깨닫는 순간 삶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간신히 쥐어 짜낸 그 힘마저 빠지기 때문에 자신의 못난 구석은 안 보는 게 현명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자주 미운 내가 싫다.      


열 살쯤이었을까.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나는 티브이에서 양말 안에 컵을 집어넣어 머리맡에 놓고 자면 다음날 그 그 속에 예쁜 선물이 도착해 있을 거라는 것을 내용에 몰입했다. 아마도 어린이가 만들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 소개했을 터. 작은 손으로 꼬물락 거리는 게 기특하니 부모더러 자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겠지. 그것을 보던 어린 나는 없던 희망과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를 것을 느꼈다. 내 간절함을 스스로 깨달은 드문 순간이라 나는 양말 속에 기어이 컵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런 나에게 오빠는 객관성을 유지했다. 선물 따윈 없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말이 얼굴을 할퀴는 느낌이 들면 나는 한동안 홍조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고는 부끄러움에 소스라치며 말문을 닫는다. 문제는 폭력적이었던 그런 말을 가슴에 새긴 다는 점.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으나 내 안에서 숨겨둔 자산이 된다는 사실. 요즘도 살면서 아주 가끔은 몽글몽글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즈음이 그렇다. 그러나 내 안의 숨은 자산은 그리 무디지 않다. 곁에 오빠도 없을뿐더러 내가 먼저 잘라 버린다.     


그러다 문득 슬퍼진다. 내가 싫은 만큼 타인도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제 너와 나의 관계가 되돌리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관계를 버리고 나니 내 연락처에 몇 명 남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안타깝기보다는 여기서 누구를 더 덜어내야 하나 생각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세상이란 실은 지옥이다. 인간은 한편으론 들볶이는 영혼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 영혼 속의 악마이기도 하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내가 순수한? 악마 같다.     


그럼에도 자려고 누우면 종종 눈물이 난다. 나와 타인에게서 희망을 걷어내고 나니 절망이 사라져 조금 편안해지지만 그래도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인생이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힘든 과제라고 하던데 힘든 날 속에서도 조금 덜 힘든 날도 있을 테니까. 그런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저 묵묵히 견디다 보면 아, 오늘은 좀 괜찮네 라는 날도 분명 있을 테니까. 신이 있다면 그 정도의 관용은 베풀 능력이 될 테니까. 절로 눈물이 마르고 어느새 나는 잠이 든다.     


내일은 농담을 하고 싶다. 농담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얄팍한 대화를 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다 보면 나를 관통하는 시곗바늘이 덜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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