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2019.02.07

by 물지우개

설이 지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은 올해 우리 가족의 행보와 내 복직에 대해 궁금해했다. 섬에서 더 이상 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지, 더 이상 놀지 말라는 경고인지 몰라도 대답하는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처럼 섬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섬에서 산 나에 대한 동정의 어조였고, 내 반응을 슬쩍 떠보는 느낌이라 반갑지않았다. 연이진이가 하루라도 빨리 학원에 가야한다거나 복직을 하면 한동안은 적응하느라 정신없겠다는 걱정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사람들의 질문이나 걱정에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은 모가 난 게 분명했다. 내가 그들에게 기다렸던 조언이나, 혹은 듣고 싶었던 질문은 뭘까 생각해 봐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비뚤어져있다.


다시 한산도에 왔다.배가 소고포에 도착하자 익숙한 섬 냄새가 반겼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내가 올때까지 기다려 준 소중한 친구처럼. 저녁을 먹고 서연이와 산책을 했다. 방파제를 옆에 두고 진두에서 야소를 지나 의암마을까지 걸었다. 잔잔한 바다는 가끔 파도로 우리의 대화에 툭툭 끼어들었다. 의암에 다다랐을때 별을 찾으려 올려다 본 하늘은 노을을 보내고 어둠을 맞는 중이라 우리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별을 꺼내려면 더 어두워져야 했다. 하늘도 매일 이맘때쯤 모가나는 걸까. 뜨겁게 사랑을 고백하던 해가 바다속으로 가라앉으면 하늘은 해를 따라 붉게 물들며 끝까지 따라간다. 가버린 사랑이지만 뜨거웠기에 빨리 식을 수 다. 길었던 사랑의 여운으로 쉽게 어두워질 수 없다. 돌아서는 것은 순간이지만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늘이 어두워지는동안은 별을 보여주지 않을만 비뚤어지고 모가 났다. 밝지만 어둡다.


아이들과 다시 학교에 갔다. 어제부터 두 마음이 다퉜지만 가자는 마음이 이겼다. 오랜만인데다가 예고없이 내가 나타났기에 그림책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적었다. 그 앞에서 열심히 읽었다. 나는 ‘눈물이 펑펑’이라는 신간을 골랐다. 유일한 친구인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바람에 주인공은 외로움에 사무쳐 눈물을 펑펑 쏟는다. 눈물홍수 덕분에 아랫마을 동물들은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집 곁으로 집을 옮긴다. 주인공을 위해 기꺼이 집을 옮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물이 넘쳐 살 수 없었기에 강제적인 선택이었다. 이 후 이웃간에 불화는 없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야기는 외로운 주인공을 위한 이웃들의 아름다운 이주에서 끝났다. 내가 섬을 떠나는 건지 섬이 나를 떠나는 건지 몰라도 나는 외롭다. 화가 나서 비뚤어지고 싶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펑펑 흘린다면 누군가가 내가 기다렸던 사랑의 언어로 다가와 친구가 되어줄까.


아침에 찔끔 비를 뿌리던 하늘이 눈물을 멈추는 듯 해서 망산에 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모난 사람에 새가 놀랐는지 여기저기서 푸드덕거렸다. 새는 깃털을 날리며 내 곁에서 멀어졌지만 나무들은 어느새 가까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나무를 들여다보니 나무는 나 없는 동안 겨울눈을 더 단단하게 키워냈다며 곁을 내 준다. 사랑스럽고 고맙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외로워도 토라지지 않고 오히려 외로움으로 겨울눈을 키우는 힘이, 모난 인간에게 쉽게 곁을 내주는 따뜻함이 부럽다.


섬이 떠나버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섬의 체취로 모난 돌에 정 맞으며 회복한다. 하늘은 어둠에서 별을 꺼내며 해를 기다린다. 나무는 겨울눈을 키우며 힘을 키운다. 은은하지만 진하게 그리고 강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