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한다. 교실에 아무도 없다. 지금부터 내 마음은 러닝머신 위에 있다. 시작은 천천히 느긋하게 출발한다. 어린이가 한두 명 교실로 입장하면 좀 더 속도를 낸다. 러닝머신 벨트가 빠르게 지나가면 내 다리는 그 속도에 맞춰 움직여 줘야 한다. 8살 아이들의 속도는 마흔에다가 교사인 나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 러닝머신 위에서 일이 십 분정도는 빠르게 걸으며 몸에 열을 낸다. 처음부터 기록에 욕심을 내면 내 몸은 탈이 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본디 저질체력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독한 감기를 앓았고, 직업상 인후염, 후두염이 잦고 전신 통도 동반했다. 러닝머신에서 과욕을 부리면 목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 건 경험상 잘 알기에 처음엔 걷는다. 러닝머신에 달려있는 티브이에 집중하며 아무 생각 없이 예능을 보고 웃으면 어느새 이마가 촉촉해진다. ⠀⠀⠀ 등교한 어린이가 절반이 넘어도 아무도 ‘아침 독서’를 시작하지 않는다. 블록이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여자 친구 주변에 몰려있다. 더러는 물통을 젖병처럼 물고 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선생님, **이가 복도에서 뛰었어요.” “쟤가 나를 밀었어요.” 환하게 응대해 줄 마음으로 등교하는 어린이를 쳐다보아도 그 아이 역시 나를 쳐다볼 뿐 공손히 인사하지 않는다. ⠀⠀⠀ 이마가 촉촉하다고 느끼면 나는 러닝머신의 속도를 올린다. 8km/h로 가볍게 달릴 정도다. 남편이라면 이 속도를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다리가 짧은 나는 분명 달리고 있다. 이 속도는 쉽게 견디며 달린다. 십 분만 지나도 이마에 땀은 흐르고 기분 좋게 숨 가쁜 정도이다. 걸을 때보다 거리를 표시하는 숫자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도 상쾌하다.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가파르게 뛰는 심장에도 근육이 붙는 듯 뿌듯하다. ⠀⠀⠀ 수업이 시작한 지 한참을 지나도 아직 교과서도 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주변 친구와 수다를 떤다. 가끔씩은 설명하는 내 목소리보다 수다 삼매경의 목소리가 더 크다. 가까이 다가가서 책을 펴라 하고, 선생님을 향해 바로 앉으라고 이야기해도 효과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수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를 보고 있다. 선생님 눈치를 보며 태도가 안 좋은 친구를 향해 잔소리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나는 준비한 수업을 시작한다. 그래, 가르치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다. 나를 통해 아이들의 지식이 더해지고 알던 지식을 확장하는 장면은 참으로 뿌듯하다. ⠀⠀⠀ 땀이 제법 나니 눈이 따갑다. 이어폰을 꽂은 귀도 간지럽다. 윗옷을 올려 얼굴을 훔치고 이어폰도 뺀다. 소리 없는 화면은 집중할 수 없다. 오롯이 내 몸에 집중이다. 달리는데 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속도를 좀 더 올린다. 지금부터는 나와 싸움이다. 스톱 버튼을 누르고 싶은 내 마음과 싸운다. 호흡이 가빠지면 입에서 쓴 맛이 나고 침이 역류하는 느낌이다. 원래 얼굴이 쉽게 빨개지지만 수줍어 빨간 것과 다르다. 수줍을 때는 귀부터 시작해서 볼을 타고 코를 지나 이마에서 끝나지만 달릴 때는 거꾸로다. 코부터 시작해서 눈을 지나 볼을 타고 마지막으로 귀와 턱이다. 땀이 뚝뚝 떨어지면 싸움은 극에 달한다. 그만둘까. 말까. 버튼을 누를까. 말까. ⠀⠀⠀ 시간이 흐를수록 교실 속에서 어린이의 러닝 벨트는 빠르게 지나간다. 줄을 서서 강당으로 가자로 출발 전에 약속했지만 서로 먼저 가겠다고 복도에서 뛰었다. 이번 시간 공부가 끝났으니 화장실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여러 번 묻는다. 말판 놀이를 하다가 주사위를 던져 친구 몸에 맞힌다. 바르게 인사하는 법을 재미있게 연습하라고 놀이를 하니 가위 바위 보로 다툰다. 복습 학습지를 주니 하기 싫다며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떨어뜨린다. 화장실 휴지를 많이 풀어서 손을 닦지도 않고 바닥에 버린다. 친구가 화장실에 가면 따라가서 문을 잠그고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나오지 않는다. 게임에서 진 친구를 놀리고 속상한 친구는 운다. 분명 먹겠다고 반찬을 받아놓고 손도 대지 않고 잔반통에 버린다. 못 본 척 넘어갈까. 따지고 야단칠까. 화를 낼까, 말까. 소리를 지를까, 말까. 인내심이 뚝뚝 떨어지고 표정은 더 굳어진다. ⠀⠀⠀ 달리기 전 나는 항상 목표점을 정한다. 오늘은 6km를 달린다던지, 20분은 걷고 20분은 뛴다던지, 아니면 400kcal를 소모한다는 목표이다. 목표점에 거의 도달하면 좀 더? 하는 욕심을 뒤로하고 멈춘다. 호흡을 고르며 러닝머신 손잡이에 다리를 올려 유연성을 과시하는 스트레칭을 한다. 뻣뻣한 다리 근육이 펴지고 땀은 더욱 세차게 흐른다. 스스로 대견함에 슬며시 미소 지으며 러닝머신을 내려온다.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 더 건강해졌어. ⠀⠀⠀ 하교 전 아이들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공부가 기억에 남니? 가장 재미있거나 힘들었거나 하는 활동 이야기해볼까?” “저는 강당에서 친구들과 논 게 기억에 남습니다. 강당 놀이는 신나기 때문입니다.” “수학 시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를 봐서 좋았습니다. 공부도 하고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말판 놀이가 좋았어요. 내가 이겨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 이야기하겠다고 여기저기 손을 든다. 발표 내용의 진실을 의심할 정도로 이때는 아이들이 가장 의욕적이다.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가다가 ‘선생님 사랑해요.’라며 안기는 아이가 두 명 있다. 나는 드디어 웃음이 난다. 편안해진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교시키면 더러워진 교실바닥도 사랑스럽다. 신데렐라처럼 혼자 밀대를 들어도 고객님을 무사히 보냈다는 대견함에 콧노래가 난다. 그래, 오늘도 아이들은 하루만큼 자랐어.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 잘 견뎠어. ⠀⠀⠀ 퇴근을 한다. 저녁은 간단하게 먹는다. 우리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주고 나는 헬스장으로 간다. 오늘은 어떤 목표를 세워볼까. 얼마나 뛸 수 있는 컨디션이지? 날씨만큼 기분도 몸도 좋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달려도 되겠다.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