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달-얼음연못 <이별가>
1.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학교 잘 다녀와.”
엄마는 밤새 끙끙 앓으셨습니다. 열이 나는지 이마가 뜨거웠습니다. 엄마는 이불을 붙들고도 덜덜 떨었습니다. 나는 세숫대야에 물을 떠 와서 수건을 적셨습니다. 엄마 이마에 얹은 찬 수건은 조금만 지나도 따뜻해졌습니다. 다른 수건을 적셔 목도 닦고 빨간 귀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습니다.
아빠는 엄마더러 맨날 천날 아프다고 짜증을 내며 출근하셨습니다. 오빠는 냉장고에서 물을 벌컥 마시고는 학교에 가버렸습니다. 나도 엄마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릇에 밥을 담고 물을 끓여 부었습니다. 작은 상에 엄마 밥, 내 밥, 그리고 김치를 담아 가져 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밥을 드시지 못했습니다.
“학교 빨리 갔다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국어 책에 동시가 나왔습니다. 가족에 대한 시였습니다. 선생님은 가족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나는 별로 생각이 안 나는데 아이들은 참 말을 잘했습니다. 가족과 놀러 간 이야기, 부모님이 주신 선물 이야기, 동생과 다툰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나는 생각이 잘 안 났습니다. 선생님은 가족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생각뿐이었습니다. 엄마가 일어났는지, 밥을 먹는지, 잠을 자는지, 열이 나는지 혹시 너무 아파 우는 건 아닌지, 엄마는 지금 뭐 하고 있는지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하필이면 선생님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늘따라 선생님을 안 쳐다봤더니 선생님은 제가 미웠나 봅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선생님이 나도 미웠습니다. 내가 일어서지 않으면 더 창피할 것 같아 나는 일어나서 조그만 목소리로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어젯밤에 열이 나서 나는 엄마 이마에 수건을 얹어주었습니다. 엄마는 많이 아픈지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저는 수건을 짜서 얹느라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엄마는 많이 아파서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나도 밥을 못 먹었습니다. 엄마는 학교에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얼른 집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는데 서서히 눈이 뜨거워지고 힘을 주어도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창피하기 싫어서 일어났는데 더 창피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발표하는 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우는 걸 눈치챘는지 아이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목소리가 더 작아지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마치자 나는 달렸습니다. 길 양쪽으로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오늘은 속상한 일이 많았지만 꽃길을 달리니 마음이 괜찮아졌습니다.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엄마가 계속 누워있더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요. 엄마는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엄마를 위해 밥을 차릴 수 있고 찬 수건도 얹을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서 엄마 생각만 하고 글을 쓰고 거기다 우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짓입니다.
나는 꽃길을 달려 엄마한테 갑니다.
2.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이 다 집에 갔다. 나도 집에 가려고 일어났다. 손을 털고 바지에 쓱 닦았다. 엉덩이도 털고 무릎도 털었다. 친구들은 달려서 집에 가는데 내 발걸음은 빠르지 않다. 어기적어기적 걷는 둥 마는 둥 결국 아파트 앞에서 멈췄다.
어젯밤에 아빠와 엄마는 싸웠다. 아빠를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울었다. 그러다 엄마도 소리를 지르고 아빠는 화를 내다가 나갔다.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귀를 막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잠이 들었다.
오늘은 덜컥 겁이 났다. 엄마가 집에 왔을까. 엄마가 밥을 차릴까. 아빠는 집에 올까. 아빠가 밥을 먹을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을까. 웃을 수 있을까. 장난을 칠 수 있을까. 엄마 아빠한테 뽀뽀를 하고 잘 수 있을까.
아니, 아니지. 엄마가 집에 안 왔을까. 아빠가 엄마 없다고 화를 낼까. 아빠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킬까. 먹다가 흘리는 나한테 짜증을 낼까. 엄마가 늦게 집에 오면 아빠는 또 소리를 지를까. 그러다 엄마도 소리를 지를까. 아빠는 엄마를 때릴까. 엄마는 펑펑 울까. 오빠는 또 집을 나갈까. 나는 자는 척을 할까. 깨진 그릇을 치울까.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해야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야 할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생각할까. 그나저나 지금 집에 들어갈까 말까.
아파트 화단, 나무에 빨간 꽃이 폈다. 이파리를 수건으로 닦아 놓은 듯 반짝거린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빨간 꽃이 폈다. 여기저기 꽃봉오리가 있다. 벌써 다 핀 꽃은 떨어졌다. 꽃 옆에 가서 손을 펴 보니 꽃이 내 손바닥보다 크다. 얼굴을 가까이 대니 꽃잎이 피처럼 빨갛다. 꽃 가운데 노랑 실 같은 부분에는 가루가 묻어 있는데 좀 징그럽다. 그래도 빨간 꽃과 어울린다. 한 걸을 물러서서 다시 꽃을 보니 예쁘다. 저 꽃봉오리가 피면 어떤 모습일까. 떨어진 꽃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다. 꽃을 가지고 싶지만 꺾을 수는 없었다. 떨어진 꽃을 주워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더 나쁜 생각을 했어야 했다. 쓸데없이 좋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엄마 아빠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었다. 나는 오빠랑 싸워도, 친구랑 싸워도 금방 까먹는데 엄마 아빠는 잘 안 까먹어지는지 오늘도 어제랑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오빠는 숙제를 했다. 나도 숙제를 하고 일기장을 폈다.
“오빠, 일기 썼어?”
“어.”
“오빠는 뭐 썼어?”
“그냥 대충 썼어.”
“일기는 그날 있었던 일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써야 하잖아.”
“어.”
“나는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엄마 아빠 싸운 건데. 그거 쓸까?”
“그거는 쓰지 마. 딴 거 써.”
“왜? 그거 말고는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래도 그거는 쓰지 마. 그런 거는 쓰면 안 돼.”
“왜 안 돼?”
“암튼 안 돼. 쓰지 마.”
나는 그거 말고는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꽃이 생각났다. 일어나서 아까 주머니에 넣은 꽃을 꺼냈다. 조금 찌그러졌지만 괜찮았다. 글을 쓰는 대신에 꽃잎을 잘 펴서 일기장에 붙였다. 날짜를 쓰고 오늘 날씨에도 동그라미를 했다.
그나저나 선생님이 도장을 찍다가 나를 불러 일기에 대해 물으면 어쩌지? 오늘의 중요한 일은 쓸 수가 없어서 대신 꽃을 붙였다고 말해야겠다.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어쩌지?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혼내면 어쩌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지도 모르겠다. 꽃잎처럼 동그란 눈물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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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더욱 내가 떠오릅니다.
묻혔던 어린이 강현정이 나타납니다.
특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를 보면
더 나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우는 아이가 사랑스럽고
우는 아이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