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행복한 통닭

치킨을 먹나요 통닭을 먹나요?

by 물지우개


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치킨이라고 답할 것이다. 음식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아이지만 치킨은 사랑한다. 아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치킨은 엄마 입장에서 그다지 달갑지 않다. 항생제 쓰는 생닭, 산화된 기름으로 튀기는 조리법, 달고 짠 양념은 건강과는 아주 먼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느 한국인처럼 우리 가족은 단골집의 치킨을 주 1회 꼭 배달시켜 먹는다.

진작부터 우리 가족의 치킨 적정용량은 2마리가 되었으니 치킨 상자가 열리면 아들은 1인 1 다리를 의무 할당한다. 그다음부터는 경쟁적으로 먹는데 치킨을 먹는 동안만큼은 대화 없이 입에 넣은 치킨의 맛에 집중한다. 입안이 기름지거나 속이 부대낄 경우 콜라와 맥주로 쉬어가기도 하지만 성실히 씹는 속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치킨 무나 냉장고에서 꺼낸 할머니표 물김치를 권해도 씹는 속도를 떨어뜨리는 방해꾼일 뿐이다.

치킨을 배달해주는 아저씨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 반가운 손님이다. 태풍이 와서 폭우가 오던 주말 저녁, 외식을 못하자 나는 배달앱으로 치킨을 주문했다. 아이들에게 배달 아저씨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미리 경고했다. 그러나 단골집 아저씨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고 이에 감동한 딸은 아끼던 사탕을 아저씨께 건네며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어릴 때 먹던 치킨을 어떻게 기억할까? 일단 배달앱에서 결제만 하던 나를 떠올릴 가능성은 낮다. 감동적인 치킨의 맛-바삭거리는 데다가 달짝지근하면서 짭조름하고, 기름지면서 고소한 맛? 엄마가 평소 잘 사주지 않아 더 반가운 탄산음료? 1인 1 다리 할당 이후 선점을 위한 속도전을 떠올릴까? 아니면 빗속을 뚫고도 따뜻한 치킨을 안겨준 신속배달 아저씨를 기억할까?


내 어린 기억 속 치킨은 일단 이름부터 치킨이 아니라 통닭이다. 지금처럼 조각난 닭이 아니라 통째로 튀겨 갈색 종이봉투에 담은 모습이다. 봉투는 닭을 담자마자 기름을 머금어 찢어졌는데 집에 오는 동안 뜨거운 열기까지 더하면 닭을 먹을 즈음에는 종이와 닭이 들러붙어 엉겨있었다. 아, 배달이 아니라 직접 가서 사 먹었는데 통닭집에 가서 사기도 했지만 길거리에서 있는 통닭 트럭에서도 샀다. 그 트럭은 매일 오는 게 아니라서 밤에 밝게 불 켜진 통닭 트럭은 어린 나에게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나 반가운 트럭을 보고도 먹고 싶다고 말하거나 사달라고 조른 기억은 거의 없으니 우리 집 경제사정에 일찍 눈을 뜬 덕분이었다.

지금도 어릴 때 먹던 모습과 비슷한 통닭을 파는 가게와 트럭이 있다. 나는 아직 트럭 통닭은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다. 늘 서있지도 않는 데다가 닭을 포장하는 동안 차 옆에 서서 기다리는 일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통닭 가게는 가끔 가는데 가게 아주머니는 우리가 먹기 편하게 가위로 조각내 주신다. 바짝 튀긴 닭을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아버지다. 월급날 푸르스름한 작업복 속에 통닭을 품고 퇴근한 아버지. 그 시절 아버지가 받는 월급은 아주 얇은 노란색 종이봉투에 현금으로 들어 있었는데 월급과 함께 나타난 것이 바로 통닭이었다. 엄마가 날렵하게 다린 푸르스름한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셨다. 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도 뒤돌아서 손을 흔드는 나를 보며 웃어주셨다. 그날이었으리라. 아버지는 퇴근길에 트럭 통닭을 사서 작업복에 끼고 오셨다. 가족이 모인 거실에서 펼쳐진 통닭은 아버지 덕분에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났다. 엄마는 통닭에 덕지덕지 붙은 포장 종이를 뜯어냈고 그 모습을 오빠와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꺼낸 노란 월급봉투. 작아서 미안하다는 아버지 눈빛과 고맙고 수고했다는 엄마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는 바짝 튀긴 통닭을 소금에 찍어 서로 입에 넣어주며 행복했다.

가난해도 행복하다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문장 이리라. 아버지는 트럭에서 통닭을 포장하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식기 전에 먹이려고 작업복을 열 땐 어땠을까? 한 손은 자전거 운전대를 잡고 한 손은 가슴팍에 숨어있는 월급봉투와 통닭을 붙잡을 땐?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그 장면에 바로 이 통닭이 있다. 먹고 살기 고달픈 장면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해도 가끔은 이렇게 기특한 장면이 숨어 있다. 스크래치화를 그릴 때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하고는 검은색 크레파스로 마구 덮어버려도 나중에 뾰족한 물체로 긁으면 처음 칠했던 색이 드러나듯이. 그제야 ‘아, 내가 이렇게 예쁜 색으로 정성껏 색칠했었지’하고 생각나듯이.

치킨과 통닭으로 내 기억 속 가난해도 행복했던 색칠을 더 찾아본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통닭을 기억할까, 아니 치킨을 이야기할까? 속은 쓰리지만 ‘태풍 속에서 빨리 와준 배달 아저씨, 그리고 전달한 소중한 사탕 하나를 기억한다’에 오백 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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